오피니언 사설

[사설] 남북대화와 한·미 연합훈련은 별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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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연락채널이 복원된 직후 한ㆍ미 연합훈련 연기론이 통일부 고위 당국자에 의해 제기됐다. 사진은 과거 실시된 연합훈련에서 한ㆍ미 장병이 함께 훈련 상황을 지켜보는 장면. [사진 미 공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어제 담화에서 “반전의 시기에 군사연습은 남북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한다”며 “남측이 8월 한·미 훈련에 큰 용단을 내릴지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가 기자간담회에서 연기론을 제기한 지 사흘 만이고, 남북 정상 간 서신 교환을 통해 연락채널이 복원된 지 엿새 만이다. 남북 교감하에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남측이 제기하자 김여정은 이를 굳히려는 듯 압박하는 모양새다.
 
통일부의 의도는 책임있는 고위 당국자가  “(연합훈련을) 연기해 놓고 대북 관여를 본격화해 보고 싶다”고 한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남북대화 재개, 나아가 북·미 대화 중재의 모멘텀으로 삼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대북 협상의 카드나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안보를 팔아 대화를 살 수는 없는 법이다.

통일부 연기론 이어 김여정 재차 압박
대화와 안보 맞바꾸는 발상은 위험

문재인 정부는 지속적으로 한·미 연합훈련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여야 5당 대표 초청간담회에서 “코로나19로 대규모 군사훈련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월에는 연합훈련 문제를 북한과 협의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정상 간 서신에서 연합훈련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꽉 막힌 남북 경색 국면과 비핵화 협상의 교착을 타개하기 위해 대화 재개를 추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안보태세 유지에 필수 요소인 연합훈련을 놓고 협상해서는 안 된다. 연합훈련의 한 축인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연합훈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훈련 없는 군대는 무용지물”이라는 전통적 미국의 입장으로 되돌아왔다. 지난 5월 미 국방부는 “연합훈련은 동맹의 연합 준비태세를 보장하는 주요한 방법”이라며 “한반도만큼 군사훈련이 중요한 곳은 없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연기론을 제기하는 것은 5월 정상회담을 통해 재확인한 한·미 동맹의 신뢰에도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기고문에서 “트럼프-문재인 대통령 시대에 한·미 동맹이 약화됐는데, 국방의 정치화가 주 원인이었다”고 한 지적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연기론의 중요한 근거로 엄중한 코로나 상황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미 연합훈련은 연대급 이상의 실기동 훈련을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실시하지 않고 있다. 규모를 대폭 축소한 지휘소 훈련조차 연기하자는 것은 북한의 요구에 끊임없이 끌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는 사이에도 북한은 끊임없이 잠수함 발사 능력과 전술핵 개발 등 핵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진정성 있는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훈련 연기를 내세울 게 아니라 북한의 핵 고도화 행위들을 먼저 중단하라고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