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국의 제작사 HBO는 ‘체르노빌’이란 5부작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선보였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사고의 전모를 재구성했다. 소련 정부의 축소·은폐 정황도 낱낱이 고발한다. 미국 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는 등 호평을 받았고, 그해 에미상(10개 부문)과 골든글로브(2개 부문)에서 각종 상을 쓸어담았다. 화려한 액션도, 화끈한 반전도 없는 다큐 드라마에 시청자는 열광했다.
직접 체르노빌을 찾아 비극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해외 방문이 힘들어졌지만, 체르노빌 지역은 2011년 방문이 허용된 이후 다크투어 여행객으로 북적였다. 특히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여행객이 더 늘었다. 다크투어란 전쟁이나 재해 등 비극의 현장을 찾아가는 여행 트렌드를 일컫는다. 아픔을 느끼고, 역사의 교훈을 얻는 것이 이 여행의 목적이다.
지난 23일 MBC의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방송에선 때아닌 체르노빌의 등장으로 논란이 일었다. 방송사 측은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입장하는 장면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고 사진을 삽입했다. 온 세계가 기억하는 비극으로 한 나라를 소개한 것이다. 비난이 빗발쳤고, 해외 언론에도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졌다. 결국 박성제 MBC 사장이 26일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잊혀선 안될 비극이다. 원인을 따지고 교훈을 새겨야 똑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 물론 비극을 다시 떠올리는 일은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드라마 시청자나 다크투어 여행자도 체르노빌을 아프게 기억한다. 재미있고 위트있게 비극을 기억하는 방법은 없다. 그런 시도 자체가 비극에 대한 조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