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고방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또 다른 드루킹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하지만 굳이 번거로운 컴퓨터 기술을 동원할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에선 지금 이 시간에도 여론 조작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언론사 기자치고 댓글 표적이 돼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정치권이건, 그 외곽이건 이름깨나 있는 사람이 한마디 하거나 페이스북에 유감의 뜻을 한 줄 올리기라도 하면, 혹은 그들만의 커뮤니티에서 누군가가 특정 기사의 링크를 공유하면, 우루루 몰려든 익명의 개인들에 의한 댓글 융단폭격이 이뤄지는 건 삽시간이다. ‘좌표찍기’라 불리는 이 방법은 이미 고전적 기법에 속한다. 조직적이든 자발적이든, 대가가 있건 없건 수많은 드루킹 상비군(常備軍)들이 언제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다.
민주주의 근간 파괴하는 여론조작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독단과
수단방법 안가리는 사고방식의 산물
그뿐이 아니다. 청해부대 집단 감염사태는 청와대·정부·군 할 것 없이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청와대 참모는 태연자약하게 “공중급유수송기 동원은 대통령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여론 조작의 세계, 즉 거짓말의 세계에서는 조작 대상인 대중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친다.
임대차법 개정 때문에 그 자신 ‘전세난민’이 됐던 홍남기 부총리는 “임차인들의 주거 안정성이 개선됐다”고 했다.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게 뛰어올라버린 전셋값 때문에 도심에서 변두리로, 서울에서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며 직주격리(職住隔離)를 강요당하고 있는 현실을 덮으려 한 것이다. 자화자찬이 중증에 이른 것이 주된 원인인지 모르지만, 여론 조작 의존증이란 합병증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어떤 현상의 한쪽 단면만 보여주며 전체를 덮으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여론 조작의 수법 중 하나다. “거짓말도 백번 하면 진실이 된다”는 괴벨스 이래의 경험칙에 중독된 결과일 수도 있다.
IT 지식을 동원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돌리는 것만이 여론 조작이 아니다. 때로는 디지털 공간을 유령처럼 배회하면서, 때로는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면서 조작된 여론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 그들이 모두 드루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