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신궁 김제덕의 파격…“파이팅” 외치자 10점에 꽂혔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6 00:03

수정 2021.07.26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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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 국가대표 김제덕 24일 오후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혼성 단체전 결승 경기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양궁은 정적인 스포츠다. 사대에서 과녁까지 거리가 70m. 10점 원은 지름이 12.2㎝로 사과 하나 크기다. 사대에서 바라보면 작은 점으로 보인다. 선수들은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영점(零點)을 잡는다. 그래서 대부분 조용하다. 감정을 드러낼 때는 활시위를 당긴 뒤 동료와 하는 하이파이브 정도다. 그런 면에서 ‘소년 신궁’ 김제덕(17·경북일고·사진)은 ‘괴짜’다.
 
김제덕은 지난달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미디어데이에서 힘차게 “파이팅”을 외쳐 눈길을 끌었다. 함께 포토라인에 선 선배 오진혁(40·현대제철)과 김우진(29·청주시청)이 당황할 정도로 목소리가 우렁찼다. 양궁대표팀 막내인 그가 패기를 보여주려고 연출한 장면 같았다. 그러나 그의 포효는 더 큰 무대에서 더 커졌다. 도쿄 올림픽에서 계속 “파이팅”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10대 젊은 나이. 처음 참가한 올림픽에서 그의 당당하고 독특한 스타일이 눈길을 끌고 있다.

양궁 혼성전서 첫 금메달
정적인 경기 관례 깨고 사자후
짝꿍 안산 “덩달아 긴장 풀려”
개인·단체전까지 3관왕 노려

지난 24일 열린 혼성전 결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안산(20·광주여대)과 짝을 이룬 김제덕은 경기 초반 흐름을 스테버 베일러르-가브리엘라 슬루러르 조(네덜란드)에 내줬다. 1세트를 35-38로 패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지 않았다. 2세트부터 파이팅 목소리가 커지더니 경기력도 덩달아 상승했다. 결국 5-3(35-38, 37-36, 33-36, 39-39)으로 역전승, 대표팀에 도쿄 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겼다. 한국 남자 양궁 역사상 최연소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 아울러 고등학생 신분으로 일찌감치 올림픽 동메달 이상에게 주는 병역 특례혜택을 확정하게 됐다.  
 
안산은 경기 뒤 “제덕이가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니까 덩달아서 긴장이 풀렸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궁 혼성에서 금메달을 딴 김제덕(오른쪽)과 안산이 24일 시상대에 올라 서로 금메달을 걸어 주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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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 경기장의 침묵과 관례를 깨는 김제덕의 사자후를 상대 선수들이 불편해할 수 있다. 혼성전 예선부터 결승까지 그처럼 소리 지르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박채순 양궁대표팀 총감독은 김제덕의 외침을 반긴다. 박 감독은 “제덕이에게 소리 지르라고 시켰다. 그런데 저렇게 크게 할진 몰랐다”며 껄껄 웃었다. 박 감독은 이어 “(파이팅을 외치는 건) 우리에겐 사기 진작일 수 있고 상대편을 흥분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규정에) 문제 되지 않는다. 긴장될 때 말을 하면 오히려 침착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몇몇 국가는 더한 방법으로 상대편의 리듬을 깨트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중국 관중이 한국 선수들이 활시위를 당길 때 노골적인 야유를 쏟아냈다. 호루라기를 불고, 페트병까지 두들기기도 했다. 심판을 비롯한 대회 관계자가 제지하지 않는 이상 큰 문제가 아니다.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경기장 안에서 감정 표출을 하지 않는다. 올림픽이라는 무대가 주는 중압감이 더 그렇게 만든다. 실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김제덕의 파이팅은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포효할 때보다 사대에 섰을 때 더 강하고 용감했다. 박채순 감독은 “(한국 양궁이) 세계 1등인데, (소리 지르는 것보다) 지는 게 더 창피한 것”이라고 했다.
 
혼성전이 끝난 뒤 김제덕은 ‘미래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외신 기자 질문에 간단하게 답했다. “파이팅하라고 하고 싶다.” 그다운 대답이었다.
 
김제덕은 남은 대회 기간 개인전, 단체전에도 출전해 사상 첫 3관왕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