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분 투척 사건은 소송전으로 비화했다. 광복군 2지대 출신 독립운동가 후손 모임인 ‘장안회’의 이형진 회장(광복군 2지대 공작조장 이재현 선생의 장남)은 김 회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했다. 이 회장은 김 회장이 부모의 광복군 공훈 기록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광복군의 날조된 공적조서를 은폐하고 이를 방조한 혐의로 황기철 국가보훈처장도 함께 고소했다. 이씨는 지난 7월 6일 공수처에 접수한 고소장에서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지 않고 방조, 묵인, 동조한 국가보훈처장과 근거도 없는 역사를 날조·조작해 독립운동사를 능욕한 무자격 광복회장 김원웅을 엄중히 처벌해달라”고 말했다.
집중취재
“가짜 유공자” “일베, 친일파” 서로 비난… 인분 투척에 소송전 등 해방 직후 복사판
김원웅 회장 부모 독립운동 행적 놓고 가짜 의혹 제기돼 갈등 폭발
김 회장의 친여·친정부 행보 등 그동안 쌓인 감정적 앙금이 분열 배경
꼬리 무는 김원웅 회장 부모 독립유공자 미스터리
김 회장에게 제기된 의혹의 핵심은 김 회장 부모의 독립운동에 관해서다. 김 회장의 부친 김근수씨(1992년 작고)와 모친 전월선씨(2009년 작고)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0년에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3선 국회의원 경력인 김 회장은 이를 배경 삼아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2019년 6월 광복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국가보훈처 공훈기록에 따르면 김근수씨는 1963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을 수훈(受勳)한 것으로 돼 있다. 김 회장도 선친이 1963년부터 정부 포상을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김근수씨의 독립운동 행적에 관한 기록에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모순이 곳곳에 나타난다. 우선 그의 사망 시기가 다르다. 김근수씨가 처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1963년 대통령 표창 당시 공적조서에는 ‘작고(作故)’라고 표기돼 있다. 1963년 이전에 이미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회장 부친의 실제 작고 시점은 1992년 1월이다. 동일 인물의 기록상 사망 시기와 실제 사망 시기가 30년 이상 차이가 난다. 1963년 공적조서에 기재된 ‘작고’가 담당자의 실수에 의한 것일 가능성은 있다. 김 회장도 이를 단순한 행정적 실수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1963년 8월 14일 자 [조선일보] 2면에 실린 ‘광복군 출신 대통령 표창 대상자 342명 명단’에 있는 김근수씨의 이름 앞에도 ‘故’라고 표시돼 있다. 사망한 것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공표돼 있었는데도 그동안 김 회장 측에서는 이를 문제 삼아 정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상한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1963년 이전에 작고한 김근수씨의 독립운동 행적은 김 회장 부친의 것과 내용이 다르다. 김 회장 부친의 1990년 공훈록에는 ‘1939년 8월~1941년 3월 조선의용대 활동’, ‘1941년 3월 광복군 편입’, ‘1945년 8월까지 중경·하남성 및 만주지방 특파공작원’으로 활동했다고 나타나 있다. 반면 1963년 공적조서의 김근수씨 행적은 ‘1939년 조선의용대 입대’,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 근무’, ‘1942년 10월 산서·화북지구 적 후방 지하공작’으로 기록돼 있다. 활동했던 시기도 다르고, 임무와 활동 무대도 다르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2020년 10월 김 회장 부친에 대한 공적 조작 의혹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처럼 새로 제기된 의문에 관한 진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김 회장의 모친 전월선(전월순으로 개명)씨의 행적도 여러 뒷말을 낳고 있다. 1990년 수훈 당시 공훈록에 따르면 전씨는 ‘1939년 중국 귀주성에서 조선의용대 입대’, ‘1942년 4월 20일 임정 의결에 따라 광복군 편입’의 공적 사실이 기록돼 있다. 전씨가 개명한 ‘월순’은 1953년에 사망한 친언니의 이름으로 밝혀졌다. 광복회개혁모임 측은 이를 근거로 독립운동을 했던 실제 인물은 월순씨였고, 그가 사망한 뒤 공적을 동생(김 회장 모친)이 가로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 같은 의혹 제기를 일축하고 있다. 김 회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모와 외삼촌을 만나서 모친의 독립운동 사실을 확인했고, 언니(전월순)의 자식들도 만나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모친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사용한 여러 가명 중 하나로 언니의 이름을 쓴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 모친은 중국 항일활동 시기에 창씨개명?
김 회장 부모의 독립운동 행적에 대해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인터넷언론 [뉴스버스]는 ‘독립유공자가 맞다는 근거보다 아니라는 객관적 자료와 정황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록이 불일치하고 보증인들이 사망한 상황에서 진실을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광복군개혁모임을 비롯해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 ‘공적 기록부터 날조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80여 년 전 행적부터 다시 검증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현재 보훈처는 사안이 중대하다고 보고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한 차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낸 적이 있지만, 이후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어서다. 보훈처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며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보훈처가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현재 두 쪽으로 갈라진 광복회 갈등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김 회장 부모 관련 의혹의 이면에는 그동안 김 회장의 정치적 행보를 둘러싼 감정적 앙금이 굳어 있기 때문이다.
이문형 광복회개혁모임 대표는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김원웅 회장을 쫓아내는 것만이 광복회를 정상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광복회 사무실 인분 투척 사건으로 고소를 당한 상태다. 광복회는 그를 상벌 위원회에 회부하는 한편 제명 절차를 밟고 있다. 김 회장 측은 자신을 반대하는 인사들을 ‘일베’, ‘친일파’로 몰아세우고 있다. 김 회장은 CBS라디오 7월 6일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광복회 회원 중에 태극기부대, 일베 이런 사람들이 20~30명 정도 된다”며 “근거도 없이 자기들 추측을 갖고 행정적인 착오 같은 것으로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정육 광복회 사무총장도 인분 투척 사건이 벌어진 날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반대 회원들을 “극단적인 일베 성향 회원”이라며 “선대에는 독립운동을 했지만, 자식들이 변절해 친일파가 된 사례도 적지 않다”고 비난했다.
광복회가 내홍에 휩싸이게 된 건 김 회장이 취임한 뒤부터다. 2020년 8월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김원웅 회장이 낭독한 기념사가 파문을 일으켰다. 김 회장은 당시 기념사에서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폭력적으로 해체시키고 친일파와 결탁했다”, “최근 광복회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관련 자료를 독일 정부로부터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 회장은 안익태를 ‘민족 반역자’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 발언 때문에 안익태 선생의 후손으로부터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각 시·도에서 열리는 기념식에서 광복회장 기념사를 대독하는 관례에 따라 각 지부에 보낸 기념사는 이보다 더 수위가 높았다. 지방 기념식에서 대독한 기념사에는 “이승만이 집권해 국군을 창설하던 초대 육군참모총장부터 무려 21대까지 한 명도 예외 없이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가 육군참모총장이 됐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도 거리가 멀다.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지 않은 인물도 다수 있고, 아예 일본군 복무를 한 적 없는 인물도 있다.
“김 회장 들어오고부터 광복회 사유화했다” 주장도
최근 정치권에서 논쟁이 벌어진 ‘미군 점령군’ 발언도 김 회장으로부터 촉발됐다는 말이 나온다. 김 회장은 지난 5월 경기도교육청이 진행한 ‘친일 잔재 청산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한 양주백석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해방 이후에 소련군은 해방군으로, 미군은 점령군으로 들어왔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또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지내며 접한 미 군정이 워싱턴에 보낸 비밀 보고서에 ‘남한을 일본에 이어서 미국의 식민지로 써야겠다’, ‘겉으로는 독립시키고 실제로는 식민지로 써야겠다’는 내용이 있다고도 말했다.
‘광복회개혁모임’ 인사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노골적인 친여·친정부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1월 25일에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독립운동 역사를 널리 알리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재형상’을 수여했다. 당시 추 장관은 검찰개혁을 내세워 윤석열 검찰총장, 야권과 대립하던 때였다. 앞서 지난해 5월에는 고 김상현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12월에는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에게도 최재형상을 시상했다. 최재형상은 김 회장이 취임한 뒤 지난해 만들었다. 그러나 김 회장이 만든 광복회의 최재형상은 사단법인 최재형기념사업회의 동의도 받지 않았다. 최재형기념사업회는 광복회에 앞서 2018년에 ‘최재형상’을 제정했다.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김 회장이 정치적 사리사욕으로 최 선생을 이용하고 있다”고 반발했고 논란이 커지자 광복회는 최재형상을 폐지했다.
“광복회 정치집단화 묵과할 수 없어” 집단행동 예고
이런 일들이 잦아지면서 차곡차곡 앙금이 쌓였고, 급기야 지난 4월 11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102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에서는 김 회장이 몇몇 광복회원에게 멱살을 잡히는 소동이 벌어졌다. 기념식이 끝나갈 무렵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당헌(棠軒) 김붕준(1888~1950) 선생의 손자인 김임용 광복회원이 김 회장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김임용 회원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광복회는 관변데모를 할 때도 안 나서고 중립을 지켰는데, 그 사람(김원웅 회장)이 오면서 편향적으로 변질돼 광복회 명예가 크게 훼손됐다”고 했다. 그의 집안은 김붕준 선생을 비롯해 부인 노영재 지사, 아들 김덕목 지사, 두 딸(김효숙·김정숙 지사)과 사위들(송면수 국방부 초대 정훈국장·고시복 전 육군 준장) 등 일가족 7명이 모두 독립운동을 한 명망가(名望家)로 꼽힌다.
이 같은 광복회의 갈등은 76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더 고조되고 있다. 광복회원 100여 명이 결성한 광복회개혁모임은 “이런 불협화음을 밖에서 아는 게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제는 수습할 단계가 지났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문형 개혁모임 대표는 “이전의 광복회는 ‘잘해보자’는 취지에서 의견 상충으로 인한 발전적 부딪힘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다. 광복회의 정치집단화, 사유화를 회원들은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안회도 최근 회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광복절까지 결론이 안 날 경우 전 광복회원과 가족이 나서 김 회장이 단상에 못 오르도록 저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형진 장안회장은 “광복회는 김 회장 추종자와 합리적인 사람들로 철저히 분열됐다. 역대 광복회장이 잘 지켜온 정치 중립을 김 회장이 들어오고서 정치조직화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월간중앙은 김 회장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광복회 관계자도 “광복회장 고소 건 등에 대해 입장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