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대표 디저트 브랜드 '허유산', 왜 망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1.07.24 12:00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홍콩 디저트 업계 '대표주자'

 
후덥지근하고 습한 홍콩 날씨. '달달한' 음료 한 잔 생각이 간절해질 때면 여행객들은 주변에 허유산(許留山)을 찾곤 했다. 현지인보다도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더 많다는 허유산은 국내에서도 블로그나 SNS를 통해 '홍콩여행 필수체험' 리스트에 자주 그 이름을 올렸다. 시원한 망고주스 한 잔 들고 홍콩 거리를 누비는 그 장면은 많은 여행객 마음속에 추억처럼 간직됐다. 
 
*중국어 발음은 외국어표기법에 따르며, 한국인에 익숙한 이름/인명에 한해 한자 독음으로 표기. 

[사진출처=허유산]

 

60년 넘게 명맥 이어온 허유산,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그런데 앞으로는 홍콩에서 허유산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채권자들에게 빚을 다 갚지 못한 허유산에 기업 청산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6일 다수 홍콩 매체 소식에 따르면, 홍콩고등법원에서 펑창디찬유한공사(豐昌地產有限公司) 등 4곳의 채권자들이 허유산의 청산절차 승인을 요청했다. 허유산은 기존에 이들 채권자에게 서면상으로 채무를 갚을 여건이 되지 않으며, 청산절차를 통한 채무 상환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지난 7월 13일 기준 기업정보 플랫폼 톈옌차(天眼查)에 따르면 허유산은 사업장 연락불통 등 사유로 '경영 이상' 상태로 분류되어 있다.


다수 매장들이 영업중단 상태에 있기도 하다. 중국 기업정보 플랫폼 톈옌차(天眼查) 조회결과에 따르면 '허유산'으로 등록된 244곳 중 196곳이 등록취소 상태에 있으며, 47곳만이 영업상태인 것으로 나타난다. 홍콩 음식점 리뷰 플랫폼 'Open Rice'에서는 현재 홍콩 내에서는 현재 5개 매장만이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사진출처=터우탸오]

과거 '홍콩 디저트 대표주자' 허유산의 창업부터 청산절차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리어카 노점상으로 시작해 성공 신화 쓴 허유산

 
허유산은 '인명(人名)'이다. 1950년대 리어카 노점상인 허유산(許留山)의 이름이다. 하지만 창업자는 그 아들이다. 중약(中藥)과 자양강장 식품을 팔던 허유산의 아들인 허자옥(許慈玉)은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아 리어카 노점상을 하며 가게 이름을 허유산으로 지었다. 하지만 그는 약재가 아닌 시원한 음료를 팔기 시작했고, 이것이 허유산의 전신이 됐다.
 
허유산은 그 후 소규모로 과일 디저트를 파는 가게로 운영되며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다 92년도에 망고와 우유, 펄 등을 담은 한 망고 디저트 메뉴 '망궈시미라오(芒果西米撈)'가 홍콩 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사업은 번창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허유산은망고 푸딩, 망고 케이크 등 다양한 디저트 메뉴를 내놓기 시작했고 시장에서도 큰 호응을 받았다.

[사진출처=웨이보 캡처]

 
2000년대 들어서 허유산은 홍콩의 대표 디저트 브랜드로 성장하게 됐고, 홍콩 노래 가사나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게 됐다. 2003년부터는 중국 내륙에서의 홍콩 자유 여행 제한이 풀리면서 그 인기는 더 커졌다. 허유산은 2004년부터는 중국 내륙으로 진출하며 광저우, 상하이 등지를 중심으로 세를 넓혀 갔다.

영화 〈小亲亲〉 내에서 허유산이 언급되는 장면 [사진출처=제몐신원]

 

'허씨' 아닌 다른 주인에게 넘어간 허유산

 
하지만 사업이 번창하는 과정에서 허유산의 주인은 몇 차례 바뀌기도 했는데, 이것이 추후 허유산이 위기를 맞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2009년 허유산 일가이자, 회사 대표로 있던 허병성(許炳城)은 말레이시아 투자회사 Navis Capital에 회사를 매각했다.
 
주인이 말레이시아인으로 바뀌며 새롭게 동남아 시장을 개척할 기회를 얻는 듯했지만, 이로 인해 중국 쪽 시장 관리가 잘 안 되는 문제들이 발생했다. 허유산의 새 주인이 기존 광저우 등지에서 허유산 사업권을 획득한 사업자와 이전에 맺었던 계약을 인정하지 않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2013년 창사 매장에서 위생문제가 터지는 등 프랜차이즈 관리가 소홀해졌다.
 
결국 2015년에 허유산은 황지황(黃記煌) 등 음식점 프랜차이즈들을 운영하는 황톈궈지(煌天國際)에 또 한 번 인수됐다. 새롭게 주인이 바뀌면서 허유산은 홍콩과 내륙 사업을 철저히 분리했고, 기존 직영점 위주 체제에서 가맹점을 늘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중국 내 매장 점포 역시 다시 빠른 속도로 늘자 사업은 다시 정상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사진출처=제몐신원]

 

'희차(喜茶)' 등 업계 후발주자들에 밀려

 
하지만 이때 중국에서도 식음료 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희차(喜茶)' 등 밀크티 브랜드들이 화제가 되면서 업계 트렌드가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에 비교적 값이 비싸고 '구식의' 허유산은 Z세대 등 새로운 소비자층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새로운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주력 메뉴에 더해 망고 음료 및 디저트 메뉴 등 허유산의 주력 메뉴들을 비슷하게 따라 하면서도 가격은 더 낮게 받았다. 30위안(5300원) 수준의 허유산 음료보다 5, 10위안가량 더 낮은 가격으로 비슷한 음료를 제공하는 경쟁업체들이 늘어났다. 새롭게 '홍콩 대표 디저트 브랜드'를 자처하며 나선 '7펀톈(七分甜)' 등 후발 경쟁업체들의 도전을 받으며 허유산의 인기는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사진출처=bbc]

 

홍콩 민주화 시위와 코로나19 '직격탄' 맞아

 
설상가상 2019년부터 연달아 닥친 외부 위기는 허유산에게 'KO 펀치'를 날렸다. 2019년에는 홍콩 민주화 시위, 2020년에는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허유산의 사업은 점차 악화일로를 겪게 됐다. 한때 300개 이상의 점포를 자랑했지만, 현재는 광저우 4곳, 베이징 1곳, 상하이 0곳 등 1선 도시 내 매장 수가 10개에도 못 미칠 만큼 축소된 모습을 보인다.
 
허유산 기업청산 관련 소식이 알려지자, 이는 곧 SNS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랐다. 그와 동시에 허유산 매장들에 '멤버십 카드 잔액 환불' 전화가 빗발치는 '웃픈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환불 문제로 매장에 전화해봤지만, 영업 중단으로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항의하는 반응들도 있었다.

[사진출처=허유산 SNS 캡처]

 
2020년 초, 처음으로 허유산이 영업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허유산은 공식 SNS를 통해 "60년 이래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요즘"이라며,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매장에서 만나요"라는 글을 게시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지금, 중국 내지의 대부분 허유산 가맹점들은 운영상태를 알기 어려운 상태이거나 이미 문을 닫았고, 과거 전성기 시절 40여 곳에 달하던 홍콩 매장 수도 현재는 5개 정도만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이나랩 허재원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