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외교사절이 대선후보의 발언을 비판하는 일은 외교 관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문제 개입은 국제관계에서 엄격히 금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헌장 제2조 7항도 이를 규정하고 있다. 미국 대선 기간 중 러시아의 해킹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주미 러시아 대사가 특정 대선 후보의 발언을 직접 반박하는 일이 없었던 이유다. 싱 대사의 오만한 행보가 본국의 지시 없이 취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국을 무시한 중국의 ‘갑질 외교’다.
‘한중관계=한미 부속품’ 주장은 왜곡
‘사드 3불’ 대중 외교 실패도 문제
더 심각한 문제는 싱 대사의 발언에서 묻어나는 ‘수직적 한중 관계’ 인식이다. 그는 사드 배치가 중국의 안보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중국 인민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한국 친구에게서 중국 레이더가 한국에 위협이 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한국의 많은 언론에서 중국 레이더 문제를 다룬 적이 있음에도 말이다. 나아가 싱 대사는 “천하의 대세는 따라야 창성한다”고 했는데, 중국을 따르라는 노골적인 압박이다.
문재인 정부 대중국 외교의 실패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싱 대사는 “사드 문제의 타당한 처리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사드 3불(不)’을 의미한 것이다. 하지만 문 정부는 대중 굴종노선이나 다름없는 사드 3불이 부끄러웠는지 합의가 아닌 입장표명이었을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누구의 거짓말인가. 청문회가 필요한 사안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가 아직 그대로인데 “한중관계가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는 궤변을 하는 것도 정부의 유약한 대응 때문이다. 사실 사드 문제 뿐인가. 정부는 잊고 싶을지 몰라도 우리 국민은 2017년 대통령 방중 당시의 ‘혼밥’과 일방적인 ‘기자 폭행’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수년간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에 집착하며 동맹의 의심을 샀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갑작스러운 동맹 강화 행보가 놀랍고도 대견했던 이유다. 하지만 또다시 말을 바꾸며 모호한 태도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가 싱 대사의 총독행세에 가까운 내정간섭을 야기한 것이다. 이제 ‘전략적 명료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수평적 한중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한중 양국은 서로에게 중요한 이웃이다. 건강하고 호혜적인 발전을 통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거듭나야 한다. 하지만 국내정치 간섭은 간과할 수 없다. 정부는 구두경고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싱 대사를 초치하고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정할 수 있음을 경고해야 한다. 누구 눈치나 보고 어물쩍 넘어간다면 싱 대사의 오만은 반복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