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면 어려울 게 없다. 첫 번째 ‘평등(EQUALITY)’ 은 모두에게 같은 상자를 같은 개수로 나눠줬다. 두 번째 ‘공정(EQUITY)’ 은 모두가 야구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키를 고려해, 없어도 되는 사람에겐 상자를 주지 않고,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줬다. 세 번째 그림은 가진 자는 더 많이 누리고 부족한 자는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는 ‘현실(REALITY)’을 꼬집었다.
그런데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그리 간단치가 않다. 모두에게 똑같이 상자를 제공한 게 그렇게 잘못됐나? 키가 다른 게 태어난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실제로 형편이 좀 낫다고 왜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하나, 큰 키 덕에 상자에 오르면 더 좋은 시야로 즐길 수 있는데 왜 그걸 희생해야 하느냐고 진지하게 묻는 사람을 봤다.
그림을 보며 생각을 넓혀보자. 만약 구조가 다른(펜스가 없거나, 아주 낮거나) 야구 경기장이 여러 개 있다면? 야구 말고도 각자의 여건에 맞춰 즐길 수 있는 다른 스포츠들이 많다면?
결국 다양한 선택지가 중요하다. 경제가 계속 성장해 좋은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다면 A기업에 취직하지 못해도 비슷한 조건의 B기업, C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 공정에 대한 불만이 상당 부분 누그러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사회가 박수를 보내는 가치를 ‘권력’과 ‘돈’에서 다른 것으로 바꿔나가는 일이다. 봉사나 기부 같은 이타적인 행동, 서로 돕고 배려하는 마음, 양보, 협동 같은 것들이 그 예다. 이제는 꽤 흔한 일이 됐지만, 구급차가 지나갈 때 운전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을 내어줄 때 느끼는 뿌듯함이 많은 돈이 주는 행복과 비슷해져야 한다.
이는 공정 사회와도 관련이 있다. 두 번째 그림에서 키 큰 사람은 상자가 없는데도 손을 들어 응원하며 즐거워하는 것 같다. 법에 따라 상자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고, 받은 상자를키 작은 이에게 줬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함께 경기를 본다는 사실에 흡족해한다. 공정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지원)에 반드시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강제로 밀어붙이고 강요하는 제도는 효과를 내기 어렵고 새로운 갈등을 낳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어떤 사안이 내 책상까지 올라왔다면 그건 정말 어려운 문제라는 얘기다. 쉬운 문제였다면 누군가 이미 결정을 내리고 해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이 그런 문제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선 ‘공정이슈’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할 게 분명하다. 이 과정에 순간의 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닌, 진지한 고찰로 공정 사회로 가는 로드맵을 짜고 실천해 나갈 정치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