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전쟁,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1.07.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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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였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오늘, 일흔살 먹은 두 호랑이는 한반도 주변에서 또다시 송곳니를 번뜩이며 싸우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또 불가사의한 일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미 일어났고 전선은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셔터스톡

전쟁은 왜 다시 일어났는가?그리고 이번엔 누가 승리할 것인가?  

트럼프 시기, 미·중(美中)이 무역 전쟁을 벌일 때만 해도 싸움은 국지전 성격을 띨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바이든 취임 이후 전선은 오히려 더 넓어지고 견고해졌다. 싸움은 불공정무역, 이념 갈등, 북핵 문제, 양국 지도자 성향 등에서 기인했다고 회자됐다.
 
그러나 정작 이것들로 오늘의 미중 전쟁을 설명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난해한 전쟁 퍼즐을 어디서부터 맞춰가야 할까?
 
필자가 우연히 집어 든 해답의 실마리는 시진핑의 ‘시애틀 강연’(2015)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5년 9월 22일 미국 시애틀에서 워싱턴주 정부와 우호단체가 공동 주최한 환영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신화통신

“세상에 본래 ‘투키디데스의 함정’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러나 대국 간에 전략적 오판이 생긴다면 스스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당시 시진핑은 강연 중에 이미 “세 명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고”, “이웃이 내 도끼를 훔쳐 갔다고 우길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2년 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자 그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을 오늘의 전장에 대입하면 이렇다.


“미·중 전쟁은 중국의 부상과 이에 따른 미국의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이 말은 본래 B.C 400여 년 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Thucydides)로부터 따온 것이다.  

(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우) 투키디데스 조각상. ⓒ셔터스톡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  
 
고전이 된 이 어구는 냉혹한 현실 정치에 깔린 내적 긴장 구조를 잘 묘사한다. 즉 신흥국의 부상은 기존 강대국에 위협감을 주고 그로부터 생겨난 불안감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논리다.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그레이엄 앨리슨 저)

2017년 출간된 책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그레이엄 앨리슨 저)은 당대 중국과 미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전면전을 일으킬 것으로 예측했다. 전쟁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의 불안감에서 시작되거나 거꾸로 미국에 눌린 중국의 압박감에서 발동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었다. 오늘 우리는 이 ‘예정된 전쟁’의 예언이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목도한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미·중 무역 전쟁, 북한 핵실험에 따른 미·중 갈등, 남한 내 사드 배치와 한한령 개시, 미 항모 대만해협 진출과 중국 전투기 시위 등은 전쟁의 현 흐름을 잘 보여준다. 미·중 전쟁은 동아시아 언저리서 이미 시작되었다.  

ⓒGBR

퍼즐을 하나씩 맞춰보자.그렇다면 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선발제인(先發制人: 먼저 공격해 상대를 제압함)’이나 ‘후발선지(後發先至: 뒤늦게 발동해 먼저 타격함)’의 시각으론 원인 규명이 안 된다. 전쟁은 신흥 강대국의 거대한 욕망에서 비롯된다.
 
미국 건국 후 100여 년쯤, 시어도 루스벨트(1858~1919) 대통령은 향후 100년이 미국의 시대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 서양문명의 수호자이자 전파자였던 그는 해군력을 키워 전쟁의 방식으로 미국의 질서를 세워나갔다.
 
중국공산당 창립 100년 무렵, 유소작위(有所作爲)를 내세우고 중국몽을 외치는 시진핑 주석은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를 꼭 빼닮았다. 차오르는 신흥국의 욕망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간다.

ⓒ셔터스톡

2021년, 중국은 이미 미국을 충분히 위협할 정도로 발전했다. 경제 규모나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은 조만간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다. 제조업, 군사력, 과학 통신, 물류산업, 디지털 화폐 등 중국의 전방위적 팽창은 미국에 거대한 공포심을 유발했다.
 
손 놓고 털기엔 미국의 불안감은 너무나 커졌다. 기존 강대국인 트럼프가 먼저 ‘선발제인(先發制人)’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  

쉽게 단언키 어렵다.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력, 외교력, 심지어 문화 역량 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영역에서 중국은 미국에 게임이 안 됐다. 그러나 지금은 '반드시 그렇다'라고 얘기하기 힘들게 됐다. 중국도 미국에 만만치 않은 역량을 축적하고 있다. 심지어 ‘승리의 추’가 중국에 기울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온다.

ⓒ셔터스톡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의 대외정책이 중동문제에 쏠려 있는 동안, 중국은 차곡차곡 내실을 다졌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시진핑의 중국은 이미 과거의 중국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안팎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하며 힘의 분산을 겪었던 반면, 중국은 애국주의와 당정일치(黨政一致)로 무장해 미국을 정조준할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미국을 더욱 쇠약하게 만들었다. 개인주의 팽배와 백신 부재 속에서 미국은 한없이 추락했다. 반면 중국은 전국적인 방역 통제와 해외유입 초기 차단으로 코로나를 제압해 나갔다. 바이든 취임 이후 백신 승인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과거 미국의 위용을 보여주기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아마도 동맹국 간의 대리전이 될 확률이 높다. ‘명예’가 서로 맞물린 고리가 화약고가 될 것이다.


펠레포네소스 전쟁 중 하나는 스파르타 동맹국 코린토스와 당시 중립국 코르키라의 충돌에서 발단했다. 아테네는 코르키라에 함대를 파견했고, 스파르타는 참전을 결정했다. 당시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사로잡은 심리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넘어선 ‘더는 묵과할 수 없는’ 명예의 문제로 치달았다.

ⓒ로이터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자존심(명예)의 한도를 넘으면 전쟁은 발생한다.
 
투키디데스의 눈으로 보면,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사드 배치와 한한령은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어떤 자존심에 관련된 것이다. 명예는 두려움, 불안감과 긴밀히 뒤엉키며 사태를 복잡하게 만든다.
 
미·중 참전의 불똥은 최근 대만해협으로 튈 가능성도 높다. 해협의 긴장은 군사력이나 이데올로기 문제를 넘어 어떤 ‘비등점’ 심리로 비화할 수 있다.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오판되면 전쟁은 발발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누가 승리할 것인가?그리고 이 전쟁은 막을 수 있는가?

책 ‘예정된 전쟁’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진 전쟁 파일 16개를 소개했다. 사례 대부분은 실제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났다. 그중 ‘전쟁을 회피한 사례’ 두 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영국-미국’ 사례로서 압도적인 미국 힘 앞에서 영국이 굴복한 사례이다. 둘째는 ‘미국-소련’ 사례인데 상호 핵균형과 신뢰 구축으로 인해 전쟁이 억제된 경우다.
 
두 전쟁 회피 사례를 참고할 때,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확률은 높지 않다. 그러나 동맹국 간의 대리전이나 새로운 전선 구축을 위해 동맹국을 끌어들이는 전쟁이 일어날 개연성은 높다.  

ⓒ셔터스톡

이 충돌은 실제로 이미 시작되었다. 이것이 필자가 푸념했던 ‘어처구니없고 불가사의한’ 역사의 반복이다.
 
미·중(美中)이 전면전을 피하고 동맹국이 대리전을 회피하더라도, 타격의 상처는 고스란히 전장에 남을 것이다. 이것이 ‘함정’ 옆에 또 다른 ‘함정’이 없는지 살펴야 할 이유이다.
 
글 강진석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철학박사)
정리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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