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기른다더니…영재학교 7곳 졸업생 12.9% 의약계열 지원

중앙일보

입력 2021.07.15 13:46

수정 2021.07.1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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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9일 오전 서울 양천구의 한 체육관에서 열린 입시업체의 고입 설명회 현장. 연합뉴스

지난 3년간 영재학교 재학생 중 12.9%가 의약계열에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재학교가 과학 인재를 양성한다는 설립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돼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15일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부가 제공한 ‘최근 3년간 전국 8개 영재학교 졸업생 의약 계열 지원 및 입학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서울과학고 졸업생 넷 중 하나는 의약계열 갔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제외한 7곳(서울·경기·대전·대구·광주과학고, 세종과학예술·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을 졸업한 학생 2097명 중 270명(12.9%)이 의약계열에 지원했다. 과학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영재학교는 자체 규정으로 의약계열 진학을 제한하지만, 많은 학생이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의약계열에 지원한 학생 중 실제 진학한 학생은 178명으로 전체 졸업생 중 8.5%로 나타났다. 이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는 졸업생 중 23.7%가 의약계열로 진학한 서울과학고였다. 졸업생 네 명 중 한 명꼴로 의약계열 대학에 간 셈이다. 이어 경기과학고, 대전과학고, 대구과학고 순으로 의약계열 진학 비율이 높았다.


세금 지원 받고 '의대 코스' 전락 비판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공개한 서울대 의대 재학생 A씨의 합격 통지서. [사진 tvN 캡쳐]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설립된 영재학교는 예산과 우수 교사 배치 등 상당한 혜택을 받는다. 현재 영재학교에 지원하는 교육비는 학생 1명당 연간 약 500만원 수준이다. 일반 고등학생의 연간 교육비 총액 158만2000원의 3배가 넘는 액수다.
 
의대 진학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각 학교가 자체적인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은 낮았다. 각 학교는 입학 때 의약계열에 진학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거나 의대 진학 관련 교사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다. 의대 진학이 확정되면 교육비와 장학금을 회수했지만, 의약계열 진학 열기를 막진 못했다.
 

의대 수시 지원하면 '영재학교 학생부' 제공 안해

 
교육계에서는 영재학교의 의대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과학영재학교는 2013년부터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의 졸업 자격을 박탈하는 강수를 뒀다. 이후 의약계열에 지원하거나 합격한 학생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올해부터 영재학교가 재학생이 의약계열 수시에 지원하면 '영재학교 학생부'를 대학에 제공하지 않기로 한 것도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영재학교장협의회는 의대 진학을 막기 위해 이 같은 대책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입시업계 관계자는 "영재학교 학생부를 제공하지 않으면 수시로 의대를 가는 길이 사실상 막힌다"며 "굳이 영재학교에서 정시를 준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의대 쏠림은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