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시 주석의 경호를 책임진 왕사오쥔(王少軍·66) 중앙경위국 국장은 이미 은퇴 시점을 넘겼다. 왕 국장은 2009년 중앙경위국 부국장을 맡은 뒤 2015년에 들어서 후진타오(胡錦濤·79) 전 주석의 경호를 책임졌던 차오칭(曹淸) 중장의 뒤를 이어 국장에 취임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대외 노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왕 국장을 놓곤 이미 2019년 말 국장직에서 사실상 물러났다는 관측도 나왔다.
중국판 ‘비밀경호국’ 1·2인자 교체
시진핑 국가주석 3연임 앞둔 포석
내부 승진 관례 깨고 경호 문외한 임명
권력 투쟁 영향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
또한 경호책임자는 전임 최고지도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정권 교체와 맞물려 바꾸지 않고 시차를 두어왔다. 장쩌민(江澤民·95) 주석은 1989년 총서기 부임 후 5년 뒤인 1994년에야 유시구이(由喜貴·82) 국장을 임명했다. 후진타오 역시 2002년 총서기 부임 후 2007년에야 차오칭 국장을 임명했다. 시진핑 주석 역시 2012년 총서기 부임 이후 2015년에야 왕사오쥔 국장을 임명했다. 또한 차오칭과 왕사오쥔 국장은 전임 국장과 달리 인민해방군 최고 계급인 상장(한국군 대장 격) 계급장을 달지 못한 점도 주목된다.
이번 인사는 경호 경험이 없는 장성을 임명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경호 책임자로 문혁 4인방 축출을 주도한 왕둥싱(汪東興)은 1940년대 옌안(延安)에서부터 마오의 그림자 수행 역할을 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경호실장 양더중(楊德中) 역시 저우언라이(周恩來)의 경호책임자 출신이었다.
새로 경위국장에 임명된 저우훙쉬 소장은 과거 윈난(雲南)에 주둔한 14집단군 산하 40보병사단 포병 연대장 출신이다. 2008년 쓰촨(四川)성 원촨(汶川) 대지진 당시 구조 작업에 처음 투입된 인민해방군 부대장이었다.
천덩뤼 부국장은 대만을 마주 보는 푸젠성 31집단군에 오랫동안 복무했다. 장저우 91사단 정치위원을 거처 서부 칭하이(靑海)성 시닝(西寧)의 육군 76 집단군에서 근무했다고 명보는 전했다.
명보는 시 주석의 경호 책임자를 내부 승진이 아닌 외부 수혈한 이유로 권력 투쟁을 꼽았다. 권력 교체기 고위층 내부 권력 투쟁에 중앙경위국이 휩쓸렸다는 이유다. 지난 2012년 3월 18차 당 대회를 앞두고 당시 중앙판공청 주임이었던 링지화(令計劃)는 자신의 아들링구(令谷)가 베이징 도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중앙경위국 병력을 출동시켜 사고 현장을 봉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