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시골 2억 집으로···"가장 위대한 대통령" 보러 수백명 몰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12 11:35

수정 2021.07.2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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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로잘린 여사가 10일 결혼 75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토요일인 지난 10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작은 마을 플레인스는 미 전역에서 온 유명인들로 떠들썩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 부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테드 터너 CNN 창업자, 컨트리 가수 가스 브룩스와 트리샤 이어우드 부부가 인구 700명의 이 마을을 찾았다.

카터 전 대통령 부부 결혼 75주년 기념식
고향 집으로 퇴임한 유일한 전직 대통령
고액 강연 대신 집짓기 운동, 인권 활동
주민 일자리 만들려 사후 고향에 묻히기로

이곳에 사는 가장 유명한 사람,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부의 결혼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행사는 지금은 박물관이 된, 80년 전 부부가 다녔던 공립학교 '플레인스 고교' 건물에서 열렸다. 올해 96세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93세인 부인 로잘린 여사는 손님 350여명을 직접 맞이했다.
 
친지와 이웃, 부자와 가난한 사람,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이 모두 모였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민주당 소속인 카터 전 대통령은 1976년 대선에서 승리해 39대 대통령을 지냈지만, 80년 혜성처럼 나타난 공화당 소속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했다. 
 
카터는 단임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는 다른 길을 가면서 퇴임 후 더 빛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카터는 한 번에 수십억 원씩 받는 고액 강연이나 기업 이사회 활동을 거부했다. 그는 2018년 WP 인터뷰에서 “백악관 생활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퇴임 후 거액을 손에 쥐는 대부분의 전직 대통령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면서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내 야망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2001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부인 로잘린 여사가 한국 천안시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인 해비태트 활동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신 카터 부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인 '해비타트' 활동과 전 세계를 누비며 저개발국의 민주적 투표 참관인 봉사, 질병 퇴치, 인권 증진 활동에 전념했다. 
 
이 때문에 퇴임 대통령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사는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로버트 스트롱 '워싱턴 앤드 리 대학' 교수)으로 불린다. 
 
퇴임 후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청렴함이다. 카터는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와 부부가 50년 전에 지은 집에 살고 있다. 백악관 생활을 마친 뒤 자신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살던 곳으로 돌아온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다. 
 
부동산 거래사이트 '질로우'에 따르면 현재 시가는 21만3000달러(약 2억 5000만원)로 미국 집값 평균 이하라고 WP가 전했다. 
 
그마저도 네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국가에 기부해 박물관을 만들기로 했다. 부부는 사후에 이 농장 한쪽에 묻히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야 관광객과 방문객을 유치해 마을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터가 사는 마을은 의류부터 공구, 식료품까지 한 곳에서 파는 잡화점 '달러 제너럴'가 가장 큰 상점일 정도로 소박하다. 이 상점마저도 카터 전 대통령이 '유치'했다고 WP는 전했다. 철도역은 하나 있지만, 도로 신호등은 없다.
 
2018년 WP는 카터 부부가 사는 집을 1961년 지은 방 2개짜리 농장 주택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부부는 토요일 저녁마다 손잡고 약 800m 떨어진 이웃집에 걸어가 종이 접시에 담은 소박한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그가 전직 대통령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차이는 비밀경호국 요원 3명이 몇 걸음 떨어져 걷는다는 점이라고 WP는 전했다. 
 
이 같은 검박한 생활 덕분일까. 카터 부부는 미 대통령 부부 가운데 가장 오래 해로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날 축하행사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로잘린 여사를 향해 "내게 꼭 맞는 여성이 돼 줘서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면서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로잘린 여사는 어렸을 때 남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도 안 했는데 "지미 카터가 나타났고, 내 인생은 모험이 됐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부부는 "오래 가는 결혼을 하고 싶다면 꼭 맞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비결"이라며 "우리는 이견을 풀기 전엔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고 AP통신 인터뷰에서 밝혔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