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저 우리의 흔적을 남겨놓는 것에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디지털 세상 속에 나의 분신을 남겨두는 것은 어떨까? 내 디지털 분신은 나와 똑같은 외양을 갖추고 나와 똑같이 말하고 글도 쓸 수 있다. 내가 죽더라도 내 디지털 분신은 온라인 공간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 그야말로 ‘디지털 영생(永生)’을 누리는 것이다.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우리의 죽음을 감출 수도 있다. SNS 계정에서 여전히 글을 쓰고, ‘좋아요’를 누르고, 지인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심지어 고인이 살아 있는 듯한 영상을 자동으로 만들어 올릴 수도 있다.
죽은 후에도 우리 데이터는 남아
AI로 디지털 분신 만들 수 있어
방대하게 축적될 죽은 자 데이터
사회적 보호·이용방안 고민할때
디지털 영생이 널리 퍼지면 죽음에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가 달라질 수도 있다. 유언을 남기고 재산을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디지털 영생 자아를 남길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혈기 왕성하던 전성기 시절의 모습으로 기억되고자 할 수도 있고, 죽기 직전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남기고자 할 수도 있다. 사후(死後) 분신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새로 영상을 찍고 목소리를 녹음해야 할 수도 있다.
현행 법제도가 디지털 영생 시대에 충분한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죽은 사람에 대한 데이터는 많은 경우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다. 법은 살아 있는 사람의 인격을 보호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온라인 서비스에서는 이용자가 사망한 경우 그 계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문제가 되고 있다. 사망자 신분을 함부로 도용하지 못하도록 해당 계정의 활동을 중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망 사실을 따로 신고하지 않더라도 장기간 활동이 없으면 그 계정을 삭제한다. 이용자가 죽은 후에도 계정을 유지해 달라고 요구할 법적 권리는 아직 없다.
개인정보 보호도 마찬가지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만을 대상으로 한다. 죽은 사람의 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니니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우리의 ‘초상권’이 우리가 죽은 후에도 유지되는지도 모호하다. 형법상 ‘사자(死者) 명예훼손죄’가 규정되어 있어 있지만,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때에는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자의 데이터에 대한 보호 범위를 무작정 넓히는 것도 해법은 아니다. 고인을 기억하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그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디지털 분신을 남기고자 하고 디지털 영생 서비스가 널리 퍼지게 되면, 머지않아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문득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과연 어떠한 디지털 분신을 남기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