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행선 각각 2차로 분리된 터널은 경사가 4~5도쯤으로 완만한 내리막길로 만들어졌다. 터널 안에는 교통사고나 화재 등 위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690m마다 상·하행으로 유턴할 수 있는 연결통로도 설치됐다. 오랜지빛 조명이 설치된 터널 외벽 아래쪽은 타일이 붙여져 깊은 바닷속을 뚫은 해저터널이라는 게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현장 관계자는 “내구성과 조도(빛의 밝기)를 고려한 공법”이라고 귀띔했다.
[e즐펀한 토크] 신진호의 충청도 구석쟁이
'연인원 80만명' 국도 77호선의 마지막 퍼즐
2010년 12월 공사 시작, 2019년 6월 관통
현장 관계자들은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착공 8년 6개월 만에 성공한 ‘터널 관통’을 꼽았다. 현대건설 권현수 팀장은 “2019년 6월 터널을 관통할 때 긴장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조금만 어긋나도 공사에 차질을 빚는데 (우리는) 오차가 거의 없이 터널 관통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시공사 측은 “지상에서 일반화된 발파 굴착방식인 ‘NATM 공법’을 해저터널에 적용한 게 이 공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터널을 발파하면서 암반에 콘크리트를 뿜어 붙이고 암벽 군데군데 쇠를 박으며 파 들어가는 전통적인 터널 착공 공법이다. 육상에서는 자주 적용되는 기술이지만, 국내 해저터널 가운데는 보령해저터널에 처음 도입됐다.
공사에 투입된 장비는 하루 평균 50대, 인력은 200명 정도다. 착공 후 현재까지 4000일 가량(11년)을 공사해왔으니 장비 20만대와 연인원 80만명가량이 투입된 셈이다.
시공사 "무른 암반구간 만나면 1m씩 굴착"
현장 관계자들은 공사 중 가장 어려웠던 순간으로 무른 암반구간에서 굴착할 때를 꼽았다. 터널을 뚫기 전 먼저 지질 검사와 암반 보강공사를 하고 그다음 폭파가 이뤄진다. 한 번 폭파하면 보통 3m씩 진입이 가능했다.
하지만 무른 암반을 만나면 1m를 전진하기도 쉽지 않았다. 암반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을 육지로 빼내는 작업도 공사를 더디게 했다. 이 물은 배수관을 통해 모두 밖으로 빼냈다.
터널 개통되면 영목항~대천항 10분
보령해저터널은 차량용 터널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해저터널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일본 도쿄 아쿠아라인(9.5㎞)이 세계에서 가장 긴 차량용 해저터널이고 두 번째가 노르웨이 봄나피오르(7.9㎞) 해저터널이다. 길이만 놓고 보면 영국과 프랑스 사이 도버해엽을 관통하는 유로터널이 가장 길다. 총연장 50.4㎞로 해저터널 구간만 38㎞로 차량이 아닌 열차가 다닌다.
터널이 개통되면 태안 안면도 최남단인 영목항과 보령 대천항 간 이동거리가 현행 95㎞(90분)에서 14㎞(10분)로 크게 단축된다. 그동안 대천항으로 나가려면 여객선이나 어선을 타고 나가야 했던 원산도 주민들의 정주여건도 크게 좋아진다.
기상악화 때면 여객선이 운항하지 못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던 주민들의 걱정이 없어지는 게 대표적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 곁을 떠나 대천시내 중학교로 진학했던 학생들도 버스가 섬까지 들어오게 돼 통학이 가능해진다.
김동일 보령시장은 “태안 안면도와 보령 대천해수욕장을 연결하는 서해안 관광벨트 구축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섬 주민들의 정주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저터널 왕복 4차로…터널 중간 비상통로 조성
해상교량은 2019년 12월 먼저 개통했다. 해저터널은 바다로 단절된 충남 보령과 태안을 잇고 부산부터 경기도 파주를 연결하는 국도 77호선의 마지막 퍼즐이다. 해저터널이 포함된 1공구의 총사업비는 4850억원으로 2010년 11월 공사를 시작했다.
당초 대천항과 원산도를 연결하는 구간은 해상교량을 설치할 예정이었다. 터널보다 건설비가 적게 든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6~7㎞에 달하는 다리를 건설하려면 수십 개의 교각이 필수적인데 그럴 경우 천혜의 보고(寶庫)로 꼽히는 천수만의 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이 컸다. 보령화력·신보령화력발전소에 연료(석탄)를 공급해야 할 대형 화물선이 지나기 위해선 다리를 높게 설치해야 하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결국 해상교량 대신 터널 건설로 계획이 변경됐다.
감리단장 "우리 기술로 한중 해저터널도 가능"
이날 해저터널 취재에는 건설공사 감리를 맡은 ㈜제일엔지니어링 이상빈 단장과 현대건설 관계자 등과 함께 했다. 이상빈 감리단장은 “역사적인 공사현장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책임감과 자부심이 남다르다”며 “우리의 기술력이면 한·일 간 해저터널은 물론, 한반도 서쪽과 중국 산둥성을 연결하는 한·중 간 해저터널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