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만 믿어” 췌장암 남편 목말 태웠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07 00:02

수정 2021.08.2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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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인생사진 찍어드립니다’

‘언제부터 사랑 아닌 의리로 살았더냐/ 오늘보다 조금만 더 행복하게 살자꾸나/ 그래도 나에겐 너밖에 너밖에 없다.’ 작은별부부의 노래 ‘의리 부부’의 가사입니다. 노래처럼 서로 ‘나에겐 너밖에 없다’는 부부입니다. 남편은 사다리에 걸터앉아 목말 탄 효과를 연출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분홍립스틱’이라는 노래를 부른 작은별가족의 강애리자입니다. 지난 3월 29일 오후 세시, 저희 부부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 겁니다. 더구나 항암 치료도 못 할 지경이라는 겁니다. 남은 시간이 6개월이라는 통보까지 받았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습니다. 둘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어처구니없고 황당해서 눈물만 났습니다.
 
살 빠지는 게 전조 증상이라는 데, 하필이면 둘이서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이어트 효과가 눈에 띌 정도니 좋아만 할 따름이었죠. 당시 남편과 함께 ‘작은별 부부’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음반도 함께 내며 활동하다 보니 다이어트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유튜브까지 진행하고 있었거든요. 코로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소상공인을 찾아가서 둘이 노래를 불러주는 유튜브까지도 하려니 바쁘기도 했고요.

‘분홍립스틱’ 부른 강애리자 부부
지난 3월 말 6개월 시한부 통보
잘 먹으며 치료, 7.6cm 암→2.1cm
“꼭 낫게 해서 행복하게 살 겁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와 맞물려 췌장암 말기까지 진행되어버렸으니 눈물만 났습니다. 이틀 내내 울고 제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췌장암과 전쟁을 선포해서, 그깟 췌장암 따위 제가 물어뜯고 꼭꼭 씹어 삼키어서라도 꼭 살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남편에게도 말했습니다. 나만 믿으라고요.
 
다행히 남편도 힘을 냈습니다. 게다가 의사 선생님도 항암 치료라도 한번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치료가 힘드니 남편이 음식을 못 먹고, 겨우 먹어도 다 토하더라고요. 어떻게든 먹여야겠기에 온갖 먹을 만한 것을 다 구해줘도 못 먹더라고요.
 
그런데 한번은 냉면이 먹고 싶다기에 같이 먹었는데 잘 먹더라고요. 그때부터 차고 시원한 음식은 토하지 않고 잘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다음부터 콩국수, 냉 메밀, 찬물 말은 밥에 보리굴비, 아이스크림 등 시원한 음식을 먹였습니다. 흔히 “항암 치료 환자는 영양실조로 죽는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잘 먹는 것을 우선 먹여서 살찌우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랬더니 항암 치료를 할 수 있는 체력이 갖춰졌습니다.


그 덕에 치료하는 남편도 매우 밝아졌습니다. 특유의 장난기도 살아났고요. 요샌 오히려 저를 웃게 해주려 애를 씁니다. 하하. 어디 가서 설문조사 했더니 저더러 134살까지 산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74년 남았으니 반 쪼개어 37년을 남편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남편을 낫게 해서 행복하게 살 겁니다. 우리 둘의 행복한 남은 인생을 위해 인생 사진을 신청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애리자 드림
 
스튜디오로 온 부부의 표정이 싱글벙글 입니다. 남편 박용수 씨의 얼굴을 보아하니 병색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더 건강해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농담을 시작했습니다. “환자가 아니라 왕자 같죠? 하하.”
 
남편의 말을 받아 강애리자 씨가 싱글벙글하며 말을 이었습니다. “2021년 5월 31일 10시 40분에요. 의사 선생님이 반 이상 줄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엑스레이 사진을 보던 다른 선생님이 췌장에 있던 7.6cm가 2.1cm로 줄었고, 간과 십이지장에 있던 암은 다 없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기뻐서 울었습니다. 사실 요새 이 양반 눈물이 많아졌어요. 걸핏하면 우는 눈물 왕자예요. 글쎄 새소리만 들어도 우는 거예요. 그 소리조차 고맙데요.”
 
남편 박용수 씨는 인생의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게 다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눈물이 난다는 겁니다.
 
이야기를 듣고 강애리자 씨에게 이 만큼 치료된 비결이 뭔지 물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의아해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제 생각엔 잘 먹은 것, 그리고 긍정 마인드인 거 같아요.”
 
난관 속에서도 긍정 마인드를 잃지 않는 부부의 사진 또한 재미있게 찍기로 했습니다. 강애리자 씨가 남편 박용수 씨를 목말 태우는 컨셉으로요. 듣자마자 강애리자 씨가 “안 그래도 그리 찍고 싶었다”며 박장대소했습니다. “그깟 췌장암 따위 물어뜯고 꼭꼭 씹어 삼키어서라도 꼭 살리겠다”고 했던 다짐대로 남편을 목말 태운 강애리자 씨가 말했습니다. “나만 믿어.”  
 
※중앙일보 디지털에서 진행 중인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프로젝트 사연과 기사체를 그대로 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