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대선 주자들의 외교 키워드
현재 다양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ㆍ2위를 다투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틀 간격으로 이뤄진 대권 도전 선언에서 외교ㆍ안보에 대한 인식을 간략하게 드러냈다.
이 지사는 1일 “강력한 자주 국방력을 바탕으로 국익 중심 균형외교를 통해 평화 공존과 공동번영의 새 길을 열겠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29일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확고한 정체성을 보여줘 적과 친구 모두에게 예측가능성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지사의 키워드 ‘균형외교’는 주로 미ㆍ중 사이에서 균형 잡힌 외교를 하자는 취지로 쓰이는 표현이다. 언뜻 듣기엔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떠올리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임기 초 균형외교를 강조했다. “미국과의 외교를 중시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도 더 돈독하게 만드는 균형 있는 외교를 하고자 한다”(2017년 11월 싱가포르 언론 인터뷰)면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불거진 한ㆍ중 간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이른바 ‘3불’ 입장(사드 추가배치 및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및 한ㆍ미ㆍ일 군사동맹화를 하지 않는다)을 밝히며 중국과 교류 정상화에 합의한 직후였다.
자주 국방 역시 문재인 정부가 중시해온 개념이다. 평화 공존도 마찬가지다. ‘친문’과 애증 관계인 이 지사가 이처럼 문 정부와 외교ㆍ안보 코드를 일치시킨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서는 안 되지만, 원칙 없이 왔다갔다 하다가는 양쪽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왔다.
한국은 원칙을 수호하는 나라이고, 이런 원칙과 직결되는 문제에서는 아무리 회유하거나 압박해도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는 점을 외교 상대국에게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나 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대한 문제에서 말이다.
원칙 없이 균형성만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한국 독자적으로 균형자가 되기에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힘 없는 균형외교는 어느 순간에 가서는 결국 뒷감당을 하게 돼 있다.
이는 아무리 이리저리 말을 바꿔도 결국 한국 외교의 근간이 한ㆍ미동맹이란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에 걸쳐 한국의 눈부신 성장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동맹이 공유하는 가치의 힘이기도 했다.
전략적 유연성을 갖추지 못한 예측가능성은 위험하다. 유리알처럼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면 수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측가능성이 곧 경직성으로 이어지면 스스로 움직일 전략적 공간을 제약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초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과거사 문제가 한ㆍ일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처럼 걸려 버리며 양국 관계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했고, 이는 원칙을 고수하려다 오히려 실리를 잃을 위기로 이어졌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외교 전장에서 때로는 옳고 그름이 곧바로 승패로 귀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지사와 윤 전 총장 모두 이제 시작이고, 특히 외교에선 둘 다 초보다. 정치 이력이 전무한 윤 전 총장은 물론이고, 도정 경험이 풍부하다고 자부하는 이 지사도 외교 영역은 다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외교의 균형성과 예측가능성 중에 무엇이 더 우위에 있느냐는 식의 뜬구름 잡는 경쟁보다 이를 구현할 ‘5W1H’(언제 어디서 누가 왜 무엇을 어떻게)를 채우는 게 그들의 숙제다. 반면교사로 삼을 전례는 차고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