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중앙시평] 누가 주례의 갓끈을 떼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1.07.0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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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끈 떨어진 갓. 이 문장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 이건 그 물건을 머리에 얹어본 사람들의 이야기겠다. 갓이 사라진 기폭제는 19세기 말 단발령이겠으니 조선시대에 생겨난 문장임은 틀림없겠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끈 붙은 갓마저 선비 머리에 얹을 의관이 아니라 민속주점 벽에 붙을 장식 소품이 되었다. 그런데 갓은 사라져도 문장은 끈질기게 구전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 문장이 결국 가리키는 것은 끈도 갓도 아닌 다른 어떤 것들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쓸모없어진 것들, 사회적 변화가 버리고 간 그것들.
 
코로나 봉쇄령으로 맞은 가장 극적 사회변화로 결혼식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래서 우리는 끈 떨어진 갓의 목록에 추가할 것 하나를 발견하는 중이다. 그게 주례다. 주례사가 펼쳐지는 예식장 건물부터 보자. 예식장은 우선 입지부터 만만찮은 계산을 요구한다. 충분한 주차장 확보가 경쟁력이므로 지가가 낮아야 한다. 동시에 도보 이용자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교통요지에서 멀어도 곤란하다. 역세권 보행거리와 지가표를 겹쳐 그리면 딱 예식장 입지가 드러난다. 거기 얹을 건물 규모는 주말 성황과 주중 폐장을 고려해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사회변화로 불필요 존재들 발생
코로나 사태로 등장한 새 결혼식
가부장적 의식의 상징, 주례 소멸
새 세대에 대한 간섭도 불필요

20세기 후반의 예식장 건물양식은 한국의 독창적 발명품이었다. 신데렐라의 성채거나 로마 귀족의 대저택 형상이되 막상 서양건축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었다. 그래서 간판도 없는 그 건물을 예식장으로 식별한다면 그는 분명 한국인이었다. ‘예식장’이던 ‘웨딩홀’은 21세기 들어서며 ‘컨벤션’으로 간판을 바꿔 달기 시작했다. 호텔 수준의 건물로 변모하여 주중 모임 유치를 위한 고심의 전략이었다.
 
이제 건물에 담긴 내용을 들여다보자. 결혼식은 청춘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의식, 이건 교과서에 쓰였을 법한 소리다. 현실의 결혼식은 신랑신부를 앞세운 양가 가문의 자존심 대결장이며 유장한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대가족제 증언장이었다. 갓 쓴 성리학사회에서 입신양명의 가시적 성과는 과거급제였으되 이게 20세기에 번역된 것은 대입성취거나 사법시험 합격이었다. 그래서 대학 동문회관에 예식장이 마련되었고 엉뚱하게 법원·검찰청·사법연수원에 폐백식장이 꾸려졌다. 하객들이 마땅히 알아들어야 할 이야기를 건물이 전해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심하거나 무지한 하객들을 위해 주례가 필요했다. 그는 사회자가 소개하는 바 신랑의 모교 은사님으로서 모모 대학의 모모 교수라는 직함이 딱 적당했다. 아니면 가문의 사회적 영향력을 증명하는 저명 인사거나. 그리하여 주례는 학사경고를 두 번 맞은 신랑의 전과는 덮고 그가 얼마나 전도유망한 젊은이며 또한 신부는 그에 어울리게 단아한 현모양처 재원임을 하객들에게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고는 연애와 결혼이 달라 결혼생활에는 사랑과 행복 외에 풍랑과 갈등도 있을 것이며 이를 슬기롭게 다스리기 위해 새출발하는 신랑신부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간곡히 당부하며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한마디만 몇 차례 덧붙인 끝에 이렇게 간단하나마 주례사에 갈음하겠다는 것이 주례의 임무였다. 그런데 막상 그 주례사의 과장된 덕담 밑에 깔린 것은 쓸데없는 걱정·간섭이었다.


끈 떨어진 갓, 그게 주례사 이후의 주례다. 그나마 주례의 얼굴이 잠시 더 필요한 것은 신랑신부의 힘찬 행진 이후 가족친지 사진촬영 직전까지다. 이후 그는 있으면 오히려 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한다. 코로나 봉쇄로 결혼식 참석인원이 제한되어 굳이 없어도 될 인물을 추려내 보니 등장한 것은 주례 없는 결혼식이다. 이게 단 1년여에 벌어진 사건이라면 전 세계가 경악할 속도의 사회 변화다.
 
함께 관찰할 것은 청첩장이다. 우선 종이우편물이던 것이 디지털문자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더 중요한 사안이 있다.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는 급속한 핵가족화를 목격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부장적 대가족의 끈은 설·추석의 정기모임과 결혼식·장례식의 부정기 모임으로 유지되었다. 종이청첩장의 신랑신부는 김모씨 장남 누구이며 박모씨 장녀 누구로서 성 없이 이름만 쓰는 것이 갓 쓰는 시절부터 전래된 유구한 법도였다. 그런데 코로나가 강요한 소규모 결혼식은 더이상 결혼식이 가문과시장이 아니어도 좋다는 실험성공기였다. 부모의 개입이 최소화된 예식이 가능해지는 순간 신랑신부들은 모바일 청첩장의 본인 이름에 당당히 성을 넣었다. 자신의 성을 명기함으로 그들은 독립된 존재임을 천명했다.
 
19세기의 갓 쓴 세대들은 단발령이 초래할 금수사회를 진정 우려했다. 과연 지금 도시에는 그 우려를 훨씬 넘어 반바지와 레깅스 입은 젊은 금수들이 활보 중이다. 그러나 그들은 임금님께 충성할 백성이 아니고 권력의 주체인 시민들이다. 사회 구성원들은 시대마다 알아서 치열하게 살았고 사회는 발전해왔다. 지금 새로운 세대는 한국 역사상 최강의 경쟁력을 장착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주례사 세대가 진정 걱정할 것은 다음 세대들이 만들어 갈 어떤 미래가 아니고 그 변화에 굳이 간섭하려 드는 자신들의 오만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