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에서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오거나, 예상한 결과라도 그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 있다. ‘극적인 승부’ 또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클리셰 같지만, 더 나은 걸 찾기 쉽지 않다. 이번 대회에서 그런 승부를 꼽아보자.
먼저 지난달 22일 열린 덴마크와 러시아의 B조 조별리그 3차전이다. 덴마크는 13일 1차전에서 핀란드에 0-1로 졌다. 진 게 다가 아니다. 더 큰 일이 있었다. 팀의 에이스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절명의 위기는 넘겼지만 더는 뛸 수 없었다. 덴마크는 18일 2차전에서 벨기에에 1-2로 또 졌다. 탈락이 유력했던 덴마크. 그러나 러시아를 4-1로 대파했다. 그 결과 골 득실로 조 2위가 됐고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27일 16강전에서 웨일스를 4-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와우. 유틀란드 반도의 황무지를 옥토로 일궈낸 엔리코 달가스의 후예답지 않은가.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지난달 30일 16강전에서 독일을 2-0으로 꺾었다. 더구나 그곳은 ‘축구의 성지’ 영국 런던 웸블리 경기장이었다. 응원가 ‘삼사자 군단(Three Lions)’ 합창이 울려 퍼졌다. 화제가 된 1990년대 잉글랜드 축구 스타 게리 리네커의 말 바꾸기는 이 승부의 정곡을 찌른다. 리네커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4강전에서 잉글랜드가 독일(서독)에 지자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다. 90분 동안 22명이 공을 쫓는데, 결국은 독일이 늘 이긴다”고 자조했다. 당시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갔고 리네커는 골을 넣었지만 잉글랜드는 3-4로 졌다. 그런 그가 이번 승리 직후 “‘독일이 늘 이긴다’는 문구는 편히 잠들라”고 트윗을 날렸다.
몇 번 졌다고 끝은 아니며(덴마크), 강자가 늘 이기는 것도 아니다(프랑스). 결국 누구나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잉글랜드·독일). 스포츠 경기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삶이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