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美, 한ㆍ미ㆍ일 ‘제재 협력’ 되살린다…"대화용 인센티브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2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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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위한 한ㆍ미ㆍ일 3각 협력을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정 박 부대표를 비롯한 미 대표단은 지난 19~23일 방한해 이처럼 대북 제재 측면에서 공동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특히 한·미 워킹그룹 폐지로 대북 제재 이행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데 우려를 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①제재 유지에 ‘日 목소리’ 커진다 

미 대표단 인사들은 방한 기간 중 정부 및 학계 인사들과 만나 "대북 제재의 전면적인 이행은 미국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강조했다고 복수의 외교 소식통들이 전했다. 또 "대북 제재 이행에 있어서 한ㆍ미 양자(bilateral)에 더해 한ㆍ미ㆍ일 3각(trilateral)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포괄적인 대북 제재 이행 문제에서는 한ㆍ미 양자 간 협의에 그치지 않고 한ㆍ미ㆍ일 3국이 함께 머리를 맞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남북 협력 사업을 위한 대북 제재 예외 인정 문제는 기존 워킹그룹의 전례에 따라 한ㆍ미 간 협의체를 중심으로 논의하되, 대북 제재 준수를 위한 핵심 기제는 일본까지 참여한 3국간 협의로 확장하는 '투 트랙' 기조로 볼 수 있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가운데)과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왼쪽),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지난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ㆍ미ㆍ일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기 위해 모인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1일 서울에서 한ㆍ미 및 한ㆍ미ㆍ일 북핵수석대표 협의가 연달아 열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김 대표는 임명 뒤 첫 아시아 방문에서 한국과 일본을 따로 방문하지 않고 한데 불러모아 3국 간 연쇄협의를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형식을 택했다. 

美 대표단 "제재 전면 이행은 우리 모두의 과제"
한ㆍ미ㆍ일 3각 협력 중심 이행 시사
워킹그룹 '종료' 인식엔 우려 표명..."수습 필요"

3국 간 제재 협의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본격화했다.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이어진 2016년 전후로 한ㆍ미 ㆍ일은 외교 차관급 협의체 등을 통해 각종 대북 제재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협의체를 주도하며 지금의 대북 제재 체제를 마련한 게 당시 국무부 부장관, 지금 장관인 토니 블링컨이다.
 
미국의 구상처럼 대북 제재 이행을 위한 3국 협력 기제가 강화할 경우 일본의 목소리는 더 커질 전망이다. 기존 제재의 단속망은 더 촘촘해지고 북한의 도발 시 제재 강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일본은 이전에도 제재 위반 활동을 포착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특히 해상자위대를 중심으로 북한 선박의 불법 환적 사례를 잡아내 유엔 안보리와 공유해왔다.

지난 2019년 12월 일본 정부가 불법 환적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을 적발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통보했다. 사진은 북한 유조선이 동중국해 해상에서 불법 환적을 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장면. 연합뉴스

②美 독자제재 ‘마이웨이’ 여전할 듯

북한에 대한 미국의 독자 제재는 미 재무부가 주도하는데, 국무부의 대북 협상 상황과는 무관하게 재무부의 원칙 및 일정에 맞춰 움직인다.  


지난 2005년 6자 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어렵사리 채택되기 직전에 미 재무부가 느닷없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시킨 이른바 'BDA 사태'가 대표적이다. 북ㆍ미 간 대화 물꼬가 트인 뒤인 2018년 8월에도 아세안외교안보포럼(ARF)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과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웃는 얼굴로 만나 악수하기 전날 미 재무부는 대북 신규 제재를 발표했다.

지난 2018년 8월 아세안외교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과 이용호 당시 북한 외무상이 만나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과 성 김 당시 주 필리핀 미국대사(현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답신을 전달하는 모습. 마이크 폼페이오 트위터. 중앙DB

이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말 재무부의 대북 제재 발표에 "누가 이랬느냐"며 "김정은은 내 친구다"라며 분노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협상을 담당하는 국무부를 "여러 부처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으며, 재무부 고유의 독자 제재 권한은 충분히 존중한다는 기조다.
 

③워킹그룹 ‘폐기’ 인식엔 우려

미 대표단은 국내에서 한ㆍ미 워킹그룹의 기능까지 완전히 폐기된 것으로 여겨지는 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워킹그룹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남북 협력 사업 관련 대북 제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외교부는 지난 22일 "한ㆍ미가 워킹그룹 종료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같은날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워킹그룹 종료에 대해 "북한에 당연히 시그널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미 대표단 내에선 "향후 수습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같은 날 성 김 대표는 국내 외교안보 전문가들과 간담회에서 한 인사가 워킹그룹과 관련해 'termination'(종료)라는 표현을 쓰자 'readjustment'(재조정)이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미국 측 또 다른 인사는 워킹그룹 폐지에 대해 '이름 바꾸기'(renaming)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열려 있지만, 제재를 통한 압박이라는 대북 정책의 다른 한 축은 분명히 유지한다는 걸 시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김 대표는 국내 인사들을 만나 북한과 조건 없는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면서도 대화에 나오게 하기 위한 인센티브 제공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한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제재 완화 등을 할 생각은 없다는 뜻으로 "북한을 비핵화 협상에 빠르게 나오도록 유인하는 의미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촉매제로 활용하자"(7일이인영 통일부 장관)는 정부의 기대와는 차이가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