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표 경질하곤 투기 아니란 靑···김외숙 또 부실검증 논란

중앙일보

입력 2021.06.27 18:33

수정 2021.06.2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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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7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김기표 반부폐 비서관 경질 관련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기표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27일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비서관의 사의를 즉각 수용했다. 사실상 경질로 해석될 수 있다. 임명 3개월여만이다. 재산공개 서류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청와대의 부실한 검증 시스템이 또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김 비서관은 사의를 밝히며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취득한 것이 아니더라도 국민이 바라는 공직자의 도리와 사회적 책임감을 감안할 때 더 이상 국정 운영에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브리핑으로 전했다.
 
이날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여론이 좋지 않다.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한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전날 청와대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김 비서관 거취 문제를 빨리 정리하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맹지 매입에, '영끌 빚투'에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의를 표명한 김기표 반부패비서관. 연합뉴스

김 비서관의 부동산 투기 의혹은 지난 25일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비롯됐다. 김 비서관은 경기도 광주 송정동에 소유하고 있는 두 필지(1578㎡)의 토지를 신고했다. 도로가 연결돼 있지 않은 ‘맹지(盲地)’다. 개발 호재 없이는 잘 거래되지 않는 토지다.


그런데 김 비서관이 토지를 매입한 이듬해인 2018년 경기도의 개발 계획 허가로 1㎞ 남짓 떨어진 곳이 송정지구 개발사업 대상지로 지정됐다. 당연히 김 비서관이 개발 호재를 기대하고 토지를 매입한 것 아니냐는 투기 의혹이 불거졌다.
 
김 비서관에겐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내 하는 투자) 비판도 제기됐다. 김 비서관이 신고한 부동산 재산은 약 91억원이었는데, 금융 채무가 약 55억원이었기 때문이다. 채무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상가 2채(약 65억5000만원)를 사들이는 데 쓰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27일 경기도 광주 송정동 김기표 비서관이 소유한 토지(왼쪽) 모습. 뉴스1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김 비서관이 사의를 표명한 뒤에도 청와대는 투기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인사 검증 시에 부동산 내역을 확인했고, 각각의 취득 경위와 자금 조달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점검했지만 투기 목적의 부동산 취득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동영 정의당 수석비서관은 전날 “김 비서관은 투기 목적은 아니라고 밝혔다만, 부동산 개발구역에 인접한 토지에 개발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라고 비판했다. ‘영끌 빚투’에 대해선 그동안 정부가 투기로 보고 대출 규제를 해왔다. 최근엔 상가 등의 비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담보인정비율(LTV)도 최대 70%로 낮췄다.
 

야당 "청와대 검증, 무능하거나 국민 기만" 

이철희 정무수석과 김외숙 일자리 수석이 지난달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투기 의혹이 인사검증 과정에서 전혀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외숙 인사수석과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을 향한 비판이 나온다. 김기표 비서관 투기 의혹은 재산공개 서류와 부동산 등기부등본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김 비서관이 송정동 땅에 시세 차익을 기대하고 컨테이너 건물을 지었다는 의혹도 제기되는데, 포털 사이트 지도 위성사진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김외숙 인사수석은 청와대 부실 검증 논란의 중심에 있다. 청와대 검증을 거친 인사들이 인사청문회에서 각종 논란으로 낙마하는 가운데서도 김 수석만큼은 자리를 지켰다.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큰 논란을 일으킨 박준영 해양수산부(낙마),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검증도 김 수석의 몫이었다. 최근엔 택시 기사 폭행 사건에도 불구하고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임명된 사실 때문에 야당이 문 대통령에게 “김외숙 수석을 경질하라”고 요구했다. 김 수석은 1992년 법무법인 부산에서 일을 시작한 이래 문재인 대통령과 30년간 친분을 맺어왔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검증 시스템은 완전하지 않다. 비판은 계속 겸허하게 수용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언론이 추가로 제기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불완전한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이 알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는 점은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청와대가 인사검증과정에서 투기 의혹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임명을 강행한 것이라면 국민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김의겸·노영민·김조원·김상조 이어 5번째

2019년 2월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조국 민정수석, 노영민 비서실장, 김의겸 대변인(왼쪽부터)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기표 비서관 사퇴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부동산 ‘내로남불’ 다섯번째 사례로 기록되게 됐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관사에 살면서 대출을 받아 재개발 예정지인 서울 흑석동 상가 주택을 25억7000만원에 샀다가 논란이 됐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집 1채를 제외하고 처분할 것을 지시하고, 정작 자신은 서울 반포 아파트를 둔 채 충북 청주 아파트를 팔아 뭇매를 맞았다.
 
김조원 전 민정수석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과 송파구 잠실동에 아파트를 보유했다가, 팔기로 했던 잠실동 아파트를 시세보다 2억여원 비싸게 내놔 비판을 받았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임대료 인상 폭을 5%로 제한한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자신의 청담동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14.1%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