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 금융팀장의 픽: 통화·재정 정책 엇박자 논란
문제는 돈줄을 죄려는 중앙은행과 달리 정부가 대규모의 확장 재정을 이어가며 불거지는 정책 ‘엇박자’ 논란이다.
당정은 14조9000억원에 이르는 1차 추가경정예산(추경)에 이어 최대 35조원의 2차 추경을 편성할 방침이다. 50조원가량이 쏟아지는 셈이다.
이처럼 정부가 수십조원의 유동성을 시중에 흘려보내는 데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을 통해 이를 거둬들이는 모양새가 예상되자 정책 효과 반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기재부는 돈을 풀어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고, 한은은 금리를 올려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지적했다.
재정 정책 효과 반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시중에 흘러넘치는 유동성이 적절치 않은 돈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우려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의 수도꼭지를 확 풀어 제치며 시중의 유동성은 과잉 상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4월 시중 통화량(M2)은 3363조7000억원으로 전달보다 50조6000억원(1.5%) 늘었다. 증가 폭과 증가율 모두 사상 최대치다. 증가율은 2009년 2월(2.0%) 이후 12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1.4%나 증가했다.
하지만 이처럼 늘어난 돈이 실물경제로 흘러가지는 못하고 있다.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돈의 재생산 능력을 보여주는 통화승수(M2/본원통화)는 지난 2월 14.42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통화유통속도(명목 국내총생산/M2)는 0.59로 200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저금리 속 고삐 풀린 유동성은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속 자산시장으로 쏠리며 과열 양상을 빚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 암호화폐까지 흘러들며 금융불안정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 1분기 기준 가계빚은 1765조원을 돌파했다.
최근 공개된 지난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도 “경제주체들이 확대된 유동성을 실적 배당상품이나 주식ㆍ부동산ㆍ가상자산 투자 등 수익추구 행위에 활용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계신용을 중심으로 시중의 통화량이 급증하는 데에 한은이 경계감을 드러낸 것이다.
한은의 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 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걱정스러운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한은은 커지는 금융불균형 압력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금통위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이 “통화정책 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가는 것이 경제 회복세에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부정적 영향은 상당 부분 완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례적인 통화 완화 기조의 장기간 지속은 향후 금리 정상화 과정의 비용을 더욱 크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통화정책 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의사록에 따르면 또 다른 위원은 “취약 가계와 한계 기업의 소득ㆍ고용 여건 부진, 자영업의 구조조정 등은 코로나19 이후에도 해소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로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보다 타켓팅된 재정지출 시행과 제도 개선을 적극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재정은 풀고, 통화 당국은 돈줄을 죄는 방향은 한은만의 실험은 아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지난 6일 “경제가 과열되지 않게 금리가 다소 올라야 할지 모른다”며 “금리를 약간 더 올려도 미국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에서 실질적으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경제의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다면 통화·재정 정책의 결별은 옐런의 말대로 경제에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이별인 셈이다.
하현옥 금융팀장 hyuno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