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간 성폭행·임신…'남편이 된 계부' 쏜 그녀 자유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26 09:49

수정 2021.06.2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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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프랑스 사온에루아르 지방법원에 들어서는 발레리 바코를 시민들이 응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법원과, 저를 지지해준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이제는 다른 모든 여성과 부당한 대우에 맞서 새롭게 싸울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24년간 성폭행·매춘강요를 일삼아온 계부이자 남편을 권총으로 쏴 숨지게 한 프랑스 여성이 석방되며 한 말이다. 
 
AFP통신 등 외신은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사온에루아르 지방법원이 계부이자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발레리 바코(40)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이 중 3년의 집행을 유예했다고 보도했다. 
 
바코는 이미 구치소에서 1년간 수감 생활을 했기에, 이날 선고와 동시에 자유의 몸이 됐다. 법원은 "바코가 오랜 세월 겪어온 두려움을 인정한다"고 판시했고, 앞서 검사 측도 "바코를 감옥으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판결이 나오자 방청석에선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바코는 잠시 실신하기도 했다. 
 

21일(현지시간) 재판에 출석한 바코의 변호인. AFP=연합뉴스

살해당한 계부이자 남편 폴레트. [SNS 캡처]

 
그의 불행은 12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부 다니엘 폴레트는 그에게 성폭행과 구타·학대를 일삼았다. 폴레트의 동거인이었던 바코의 엄마는 딸이 임신하지 않는 이상 신경을 쓰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폴레트는 1995년 근친상간 혐의로 수감돼 3년간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출감 뒤 다시 바코 곁으로 돌아왔다. 바코는 "폴레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와 함께 사는 것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바코는 계부의 아이를 네 번이나 가지게 됐고, 폴레트는 그를 아내로 삼았다. 부부가 된 뒤에도 악몽은 계속됐다. 폴레트는 둔기로 때리는 등 폭력을 일삼거나 성폭행을 했고, 14년 동안 매춘을 강요했다. 레즈비언과 성행위를 강요하고 이를 촬영하기도 했다. 
 
바코는 폴레트가 자녀들에게까지 검은손을 뻗칠까 두려워했다. 결국 2016년 그를 총으로 쏜 뒤 지옥 같은 생활이 끝났다. 시신을 유기하는 데는 폴레트와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이 도왔다. 
 
바코는 지난달 회고록 『모두가 알고 있었다』를 통해 지옥 같았던 과거를 폭로했다. 책 제목은 조금만 관심이 있었다면 누구나 그들의 비극을 알아챌 수 있었지만 사회로부터 외면받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코는 폴레트 살해에 대해 "나 자신을 지키려고 한 것이다"라면서 "내 삶과 내 아이들의 삶을 지키는 것,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고 회고록에서 설명했다.
 

인스타그램에는 #valeriebacot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바코를 응원하는 게시글이 속속 올라왔다. [SNS캡처]

 
바코의 재판 소식이 알려지자 SNS 등에서는 바코의 무죄를 주장하는 여론이 이어졌다. 결국 법원도 바코의 죄를 사했다. 바코가 이날 법원을 나설 때 여성단체 활동가를 비롯한 시민들은 그를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