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풀린 유동자금이 GTX 따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몰린다. 조짐은 진작부터 있었다. 정부가 2019년 12ㆍ16대책 때 9억원 이상 고가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조이자, 돈은 경기 남부 ‘수용성(수원ㆍ용인ㆍ성남)’으로 몰렸다. 신분당선 연장 계획, 인덕원선 건설과 같은 교통 호재에 9억원 이하 아파트가 많다는 점이 맞물려 집값이 급등했다. 정부 규제가 만든 ‘풍선효과’다.
GTX 따라 몰리는 유동자금
깜짝 역 발표에 인근 급등
내집 마련 불안한 실수요자도 가세
전국 시군구 236개 중 약 절반이 규제 대상이 됐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부동산 시장에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적고, 규제까지 많다 보니 호재 있는 몇몇 물량에 돈이 극단적으로 몰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규제로 꽁꽁 묶인 부동산 시장 뚫는 GTX
노선 호재를 직접 입은 지역의 집값은 기대감에 더 고공 행진했다. 안양 동안구(0.95%), 시흥시(0.78%), 군포시(0.78%) 등이 유례없는 상승률을 보였다.
올해 1월만 해도 10억대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반년 만에 6억원이 오른 셈이다.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이후 호가는 18억 원대다. 단지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역에서 중개업을 꽤 오래 했지만 이런 상승세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양주도 GTX-C 노선 기대감에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다. 원래 서울로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탓에 아파트 가격은 쭉 정체됐던 지역이었다. 옥정신도시 등 대규모 아파트 공급이 더해지면서 미분양도 심각했다.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양주시 덕정도 양주서희스타힐스2단지의 시세는 올 초 3억5500만원이었다가 이달 들어 5억대가 됐다. 반년 사이 40% 올랐다.
전세 불안감에 GTX 따라 수도권 내 집 마련
김 씨는 “집 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하면 전셋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같은 평형의 전세 시세가 3억~4억원이 올라 차라리 아파트를 매수하는 게 낫다고 보고 있다”며 “집값이 많이 올라 떨어질까 봐 고민스럽지만 GTX 호재가 있는 경기 신축 아파트를 둘러보니 가격은 서울보다 낮지만 주거 환경은 서울보다 낫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산의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장 모(32) 씨는 GTX-A 노선 창릉역이 신설이 확정되던 지난해 12월 말 인근에서 분양 중인 오피스텔을 급히 샀다. 장 씨는 “언제 이사 나가야 할 지 모르는데 집값은 너무 올라 불안하던 차에 GTX 호재가 있는 오피스텔을 매입했다”며 “당분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어서 오피스텔이 다 지어지면 살다가 GTX가 개통되면 적당할 때 차익을 보고 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GTX가 광역도시계획을 토대로 지자체 간의 숙의를 거쳐 나온 결과여야 하는데 사업자 제안으로 역이 어디가 될지 말지 결정되다 보니 전혀 계획되지 않은 새로운 요소가 생기고 자금이 극단적으로 쏠리게 된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시장 안정화를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별로 없어 보인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경제금융연구실장은 “금리가 올라가거나 공급 외에는 답이 없는 상태”라며 “장기적으로 공급이 꾸준히 계속돼서 지금 안 사더라도 언제든지 집을 살 수 있다는 신뢰가 쌓여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은화ㆍ김원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