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정원 직원모임'(직원모임)은 이날 오전 6시 30분부터 2시간여간 서울 서초구 국정원의 정문·남문·후문에서 각각 2명씩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국정원 정체성 훼손하는 박지원 사퇴하라" "간첩글씨체 원훈석 깨부수자" 등의 피켓을 들었다.
"국보법사범 신영복체 치워라"
21일부터 무기한 시위 돌입
전직 요원들이 직접 행동에 나선 건 원훈석의 글씨체를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손글씨를 본떠 만든 '어깨동무체'(신영복체)로 채택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인식 공유 때문이다. 신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20년을 복역하고 1988년 특별가석방됐다.
"국보법 사범 필체로 상징 변경 말 안돼"
장종한 직원모임 사무총장은 "원훈석은 국정원의 상징과도 같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평소 존경하는 사상가로 꼽아왔다지만, 국보법 위반으로 복역했던 사람의 필체로 국정원의 상징을 바꾼 것은 자존심 상하고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 전직 요원들이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 정권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원훈석을 갑자기 바꾸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여권에서) 국보법 폐지를 추진해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원훈석의 글씨체를 이같이 바꾼 것도 그들의 (국보법 폐지 추진을 위한) 표현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신영복체가 소주 '처음처럼'이나 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인 '사람이 먼저다' 등에 널리 쓰이고 있지만, 대북정보 활동을 하는 국정원의 원훈에 사용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신분 숨기고…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름없는 별'
이들은 지난해 말 여권에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추진할 때 국정원 역사상 처음으로 시위에 나섰다. 당시에는 2주간 시위를 진행했다.
한편 국정원은 지난 4일 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새 원훈석 제막식을 열었다. 창설 60주년을 맞아 2016년부터 사용한 원훈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를 5년만에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바꿨다. 이 자리에서 원훈석의 글씨체가 '신영복체'인것도 처음 밝혀지며 논란이 확산했다.
국정원의 원훈은 그간 네번 바뀌었다. 61년 국정원 전신 중앙정보부가 창설하며 초대 중앙정보부장인 김종필 전 총리가 지은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를 원훈으로 삼았다. 이 원훈은 37년간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98년 '정보는 국력이다'로 원훈을 바꿨고,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에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을 원훈으로 채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