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2019년 10월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개최한 임직원 타운홀 미팅에서 젊은 직원들과 애플 아이폰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현대자동차가 네이버·카카오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밀집해 있는 판교 디지털 밸리에 미래차 연구·개발(R&D)을 위한 거점을 만든다. 제조 기업인 현대차가 소프트웨어(SW) 개발자 위주의 판교에 사무실을 만드는 건 처음이다. 정의선(51) 현대차그룹 회장은 2018년부터 줄곧 "의사결정의 방식, 속도가 IT업체보다 더 IT업체 같아져야 한다"며 조직에 혁신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가 올 초 신설한 '선행기술원'이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백현동)에 있는 크래프톤 타워(옛 알파돔4)에 3분기(7~9월) 내로 입주한다. 현대차의 임대 규모는 1개 층 전체(2201평)로 축구장 넓이(2100평 안팎)보다 크다. 1980년대생 이하 'MZ세대'에 친숙한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크래프톤이 입주해있는 이 빌딩은 지하철 판교역과 연결된 초역세권으로 꼽힌다.
판교밸리 요약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판교에 입주할 선행기술원은 올 초 정의선 회장 직속으로 현대차에 새로 생겨난 조직이다.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 산하에 있던 여러 R&D 부서 가운데 미래차 관련 연구 직군을 따로 모았다. 전동화 시스템,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이용자경험(UX·UI) 개발 등 미래차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고도화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한다. 현재 60명 안팎이 근무하고 있고, 지난달부터 경력·신규 채용 등을 통해 인원을 늘려가고 있다.
현대차가 판교에 거점을 마련하는 이유는 향후 자율주행 전기차 시대에는 'A급 개발자'가 더욱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되려면 컴퓨터가 신호등, 차간 거리 등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매끄럽게 처리하도록 설계할 개발자가 필수적이다. 게임 업체인 NC소프트·넥슨의 경우, 2000년대 PC 게임 시절부터 3차원(3D) 그래픽을 버벅대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노하우가 쌓여있다. 현대차와 미래차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미국 IT기업 엔비디아도 처음에는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개발하다가 최근 들어 차량용 반도체까지 사업 범위를 넓혔다. 특히 현대차는 판교에 거점을 둘 경우 높은 연봉과 워라밸(일과 생활의 양립)을 중요시하는 MZ세대 개발자 확보에도 유리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현대자동차가 2019년 9월 중국 베이징에 연 개방형 오피스 '크래들 베이징'. [사진 현대차]
미래차 개발 이외에도 현대차는 판교 사옥을 '애자일'(기민한) 기업문화을 위한 전진 기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네이버·카카오 등 판교 기업에 익숙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현대차에도 도입하려는 의도다. 현대차는 크래프톤 타워에 선행기술원뿐 아니라 100석 규모로 원격 근무가 가능한 거점 오피스를 개설할 계획이다. 정의선 회장은 올 3월 임직원 타운홀 미팅에서 "위성 오피스를 만들어 거기로 출근해서 일하면 출퇴근 시간이 단축되고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낙점한 크래프톤 타워는 판교 밸리에서도 '노른자위 땅'으로 꼽힌다. 신생기업(스타트업)에서 매출 1조원 규모까지 성장한 유니콘 기업 크래프톤(옛 블루홀)이 3년 전 입주해 건물주와 장기 계약을 맺고, 건물명을 아예 크래프톤 타워로 바꿨다. 네이버와 그 자회사 '스노우'가 같은 건물에 있고, 구름다리로 연결된 알파돔 타워에는 카카오페이·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게임즈 등 카카오 계열사가 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