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은 15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8기 3차)에서 “반(反)사회주의, 비(非)사회주의와의 투쟁을 더욱 공세적으로 실속있게 전개해 나가는 데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원칙적 문제들을 천명했다”고 노동신문이 16일 전했다.
2년 전 레드벨벳 공연에 흐뭇했던 김정은
이젠 "반사회주의 투쟁하라" 강력 지시
하노이 회담 결렬 뒤 내부 결속 회귀
반동사상배격법 만들어 K-POP 단속
당초 ‘젊은 지도자’로 등극했던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직후 은하수 관현악단, 모란봉 악단 등을 창단하며 ‘서구 스타일’ 확산을 개의치 않았다. 부인 이설주 여사의 금성학원 동창이나 후배들을 대거 등장시킨 모란봉 악단 창단이 대표적 예다. 모란봉 악단 가수들이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공연에 나섰고, 전자 바이올린과 전자 첼로, 전자 드럼과 같은 서구식 음악을 활용했다. 모란봉악단이 북한판 ‘걸그룹’으로 불렸던 이유다.
또 이 악단은 공연 중간에 미국의 만화영화 주인공인 미키마우스와 백설공주 인형을 등장시키고, 영화 ‘록키’의 주제곡과 팝송 ‘마이웨이’를 연주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전파를 타고 북한 전역으로 퍼졌다. 김 위원장 역시 이 공연을 보고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은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과거 북한의 악단 공연은 긴 드레스나 한복을 입고 공연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김정은 시대 들어 기존에 자본주의 문화로 터부시했던 것을 풀어 젊은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 프로농구의 이단아로 평가받는 데니스 로드먼을 두 차례나 초청해 친선 농구대회를 열고, 주민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김 위원장의 태도는 확 달라졌다. 남측 아이돌 노래는 물론이고 김 위원장이 선물한 벤츠 버스를 타고 전국 순회 공연에 나서던 모란봉악단은 최근 북한 TV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전국적으로 한국 드라마와 가요, 뮤직 비디오, 서방 문화 등의 유포를 대대적으로 단속중이다. 과거 1990년대 후반 비사그루빠(비사회주의 그룹)라는 단속반이 VCR 테이프를 집중적으로 찾아 다녔다면 이번엔 주민들의 USB를 중점적으로 뒤진다는 게 차이다.
이같은 K-POP 척결은 공교롭게도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ㆍ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확산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엔 자본주의 문화와의 단절을 강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처벌 규정까지 만들었다. 법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남한의 자본주의 날라리풍 처벌이 주목적임은 분명하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북한 청년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자본주의 문화 접근 현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며 “북한 지도부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데, 대외적인 환경이 어려울 때 내부 결속을 다지는 차원에서 단속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남북, 북ㆍ미 관계에 따라 ‘남측 문화’를 쥐었다 폈다 한다는 얘기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