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달이 지났지만 더 이상 인턴 자리를 기대하기는 힘든 것 같았다. 미리 인턴을 구해놓고 휴학을 하지, 딸에게 한마디 했다. 그러면서 이왕 휴학을 했으니, 학기 중에는 하기 힘든 편의점이나 음식점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무슨 대단한 스펙이 될 리는 없겠지만, 일자리의 고단함이나 사회생활의 단초라도 느꼈으면 했다. 딸아이도 흔쾌히 동의했지만 알바 일자리 얻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지원서를 냈지만 답이 없었다. 그렇게 딸의 한 학기 휴학이 끝났다.
소득주도 성장은 ‘무식·무능·무모’
단시간 알바 모집에도 전화 빗발
붕어·개구리·가재 생태계만 무너져
지난 주말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만민토론회에서 터져 나온 한 자영업자의 소득주도 성장(소주성) 비판이 화제다. 광주와 담양에서 카페를 하는 배훈천씨는 소주성을 ‘무식, 무능, 무데뽀(무모)’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유튜브 댓글을 보니 “실제 자영업을 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말씀” “눈물이 난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만! 뼈 때리셨어요”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배씨의 절절한 토로 가운데 개인적으로 눈길을 끈 게 알바 얘기였다. “웬만해선 알바 안 씁니다. 알바를 쓰더라도 15시간 미만으로 경력이 있는 알바생만 뽑습니다. 예전 같으면 근무시간이 짧아서 돈이 안 된다고 쳐다보지도 않던 일자리를 지금은 모집 광고 한번 내면 하루 만에 마감됩니다. 어찌나 전화가 많이 오는지 장사에 지장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는 “강남이란 구름 위에서만 사는 자들이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오순도순 살고 있는 자영업과 서민들의 생태계를 순식간에 망가뜨려 버린 것”이라고 했다.
카드 수수료 인하의 의도하지 않은 역효과도 생생하게 고발했다.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깎아준다고 다들 환영했지만 카드수수료가 내려가자 판매시점정보관리시스템(POS)을 임대하고 관리해주는 부가가치통신망사업자(VAN)가 카드사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줄고, 결국 자영업자가 VAN 사업자에게 무료로 받던 서비스들이 하나둘 없어지고 유료화됐다는 거다. 무상으로 받던 영수증 출력용지도 이젠 돈 주고 사야 한단다. 카드사의 다양한 이벤트가 줄면서 소비 촉진 효과도 사라졌다. 착한 의도의 정책이 초래한, 결코 착하지 않은 나비효과다. 배씨가 “눈앞에선 이익인 것 같은데 돌아서 보니 손해”라고 하소연하는 이유다.
코로나로 힘들어진 자영업을 살린 건 정부의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배달의 민족인데, 이걸 잡겠다고 공공배달 앱을 보급하는 정책도 비판했다. 그는 김영삼 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자영업을 해온 ‘상인의 현실감각’을 거론하며 호소했다. 정부의 시장 교란행위를 중지하고, 공공부문은 줄이고, 시장경제는 살려야 한다고.
현 정부에서 늘어난 일자리는 택배기사, 배달 라이더, 노인 일자리뿐이고, 코로나가 외려 정부의 정책 실패를 가리는 핑곗거리를 제공했다는 그의 비판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그러면서 “정치인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을 떠올렸다. 어느 광주 상인의 현실감각에서 배워야 할 게 많았다.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