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저절로 승계되지 않아
사회 전 분야 독식한 586세대
'또 다른 이준석'이 타파해야
586 기득권이 강고한 곳은 당연히 더불어민주당이다. 모순이 커진만큼 갈등도 터져 나오는 게 순리다. 재·보선 직후(4월 9일) 미미한 저항이 있긴 했다. 오영환ㆍ이소영ㆍ장경태ㆍ장철민ㆍ전용기 등 초선 5인의 입장문 발표다. 머리를 치켜들며 대든 것도 아니다. 고작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 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분열됐다”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감히 ‘조국’을 입에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초선 5적”으로 몰리면서 조기 진압당했다. 이들은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백기 투항을 인증했다.
엉뚱하게 불똥이 튄 건 국민의힘이다. 이곳에선 세대 개념의 586만 있을 뿐이요, 친박 패권주의가 남아있으나 그들의 구심력 역시 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즉 레닌의 분석대로 586의 완력이 부재한 ‘약한 고리’이기에 반란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샐러드 볼'을 언급하며 공존과 개성을 강조했다. ‘다움’을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정치인의 연설보다 학자의 강연 느낌이다. 이에 “대선을 코앞에 두고 정권 탈환에 매진해야 할 엄중한 시기에, 이 무슨 한가한 소리냐”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이 대표의 당선과 발언을 들으며 이제서야 한국 사회가 조선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해방 후 70여년이 훌쩍 지났지만 대한민국은 물질적으로는 최첨단을 향유할지 몰라도 의식에선 여전히 전근대, 봉건 사회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니 전 국무총리가 “장유유서”라며 삼강오륜을 입에 올리고, 집권당 대표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발탁돼 은혜를 입었는데, 이를 배신하고 야당 대선 후보가 된다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는 일”이라는 소리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선에 도전한다는 김두관 의원이 9년 전 대선 경선에서 공격했던 일을 상기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큰 형님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것이다. 진보 인사마저 586을 향해 “민주건달”(홍세화)이란 비아냥을 퍼붓는 이유다. 이준석의 개인주의는 586의 집단주의와 대척점이다.
이준석호의 당면 과제로는 야권 통합, 정권 교체 등이 꼽힌다. 본질적으론 비대해진 노조 및 공공부문과의 전면전을 선포해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586은 정치에만 국한된 카르텔이 아니다. 특히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에서 기성세대는 구조조정에 몰리고, 아랫세대는 신규 채용이 불가능해지면서 당시 기업의 하단부를 형성했던 586은 칼날을 피해 생존할 수 있었다. 이후 주지하다시피 정규직-비정규직의 차별 구조는 심화했다. 이같은 기업에서의 신분적 위계화에 대해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자본과 586세대 노조 리더간의 공모"라며 "586은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니라 불평등의 생산자이자 수혜자"(『불평등의 세대』)라고 일갈했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여 왕좌에 오를 수 있었다. 권력은 승계되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정치에선 36세 이준석이 물꼬를 텄다. 이제 노동계, 문화계, 교육계 등에서 숨죽여 있던 '또 다른 이준석'이 586에 철퇴를 내릴 때다.
정치 에디터 min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