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는 대통령 못하는 '장유유서 헌법'···그것만 콕 집어 개헌?

중앙일보

입력 2021.06.07 10:00

수정 2021.06.1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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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헌법 제67조 4항)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려면 무조건 40세가 넘어야 한다. 헌법이 그렇게 못 박고 있다. 최근 들어 부쩍 2030에 주목하고 있는 정치권에서 이 조항을 고치자는 '원포인트 개헌' 논의가 일고 있다. 정의당 청년 정치인들이 적극적인데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와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피선거권을 제한한 헌법 67조는 차별이자 불공정한 조항”이라며 폐지를 주장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년에게 출마할 권리를' 대선 피선거권 보장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호정, 강 대표, 장혜영 의원.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불고 있는 ‘이준석 돌풍’도 촉매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 대표 예비 경선을 1등으로 통과한 이준석(36) 후보는 한국갤럽이 4일 발표한 차기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3%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작 이 후보는 내년 3월 9일 열리는 20대 대선에는 나이 제한에 걸려 출마할 수 없다. 이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나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 피선거권 나이 제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전부터 있었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관련 내용이 담겨 있고, 여당 대선 주자인 이낙연·박용진·김두관 의원도 “2030 청년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제한하는 규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6일 오후 울산 남구 국민의힘 울산시당에서 열린 당원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야당도 찬성하는 기류가 있다. 김병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변화의 조짐에서 그칠 게 아니라 영속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40세 제한은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었다?

 
그렇다면 나이 제한 규정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이 조항은 박정희가 만들었다. 당시 40대였던 박정희가 30대 경쟁자들을 배제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하면 강민진 대표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이 1962년 개정한 헌법에 만 40세 제한 규정이 처음 담긴 건 맞다.
 
하지만 1952년 제정된 ‘대통령·부통령 선거법’에도 40세 제한이 있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시엔 불혹(40세) 정도는 돼야 국가 원수를 시킬 수 있다는 유교적 관념이 지배적이었다”며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었다면 1987년 개헌 때 뺐을 텐데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 때 개정한 헌법에선 대통령 나이 제한이 만 30세로 낮춰지기도 했다. 그랬던 것을 1987년 개헌 때 다시 만 40세로 높인 것이다.
 
대통령 피선거권 나이 제한이 한국이나 유교권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35세)이나 독일(40세) 등 서구 국가도 나이를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 정치의 초기 발전 단계에서 과세 여부, 성별, 나이 등으로 피선거권을 통제해왔다”며 “서구권에서 연령 제한을 낮추고 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국가도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대통령을 시킬만한지는 국민이 직접 판단하면 된다.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나이로 출마를 원천봉쇄하는 조항은 유권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연령을 낮춘다고 해도 기준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정치권 “취지는 동의, 원포인트 개헌은 글쎄”

 
정치권·학계의 의견과 별개로 원포인트 개헌의 현실성에 대해 여야 의원들은 “취지는 동의하되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정의당이 기자회견을 한 지난달 30일 “청년들의 의견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헌법 구조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에 동의한다”면서도 “개헌으로 가기까지 별도의 절차가 있어 향후 논의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포인트 개헌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원포인트 개헌은 현실성이 없다”며 “이거 하나 고치려고 개헌을 한다면 국민투표 비용도 고려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권력구조나 기본권 개편도 하자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전 대표도 4일 페이스북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개헌을 논의하면서 이 문제도 함께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원포인트 개헌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