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 김선욱(33)은 전화 인터뷰에서 만족스러워했다. 5일 오후 7시(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과 협연한 직후였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이 거쳐 간 세계 최고의 악단 중 하나. 김선욱의 말처럼 “음악 하는 사람 중 협연을 꿈꾸지 않는 이 없는 오케스트라”다. 김선욱에겐 베를린필 데뷔였다. 2006년 리즈 콩쿠르에 18세로 우승하며 국제무대에 알려진 후 15년 만에 베를린필과 첫 협연했다.
“까다로운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
오케스트라는 처음, 난 열번째 연주
내가 원하는 템포·방향으로 진행”
김선욱에게는 이번이 열 번째 진은숙 협주곡 연주였다. 2013년 스웨덴에서 처음 연주했고 2014년엔 서울시향과 함께 음반을 녹음했다. 김선욱은 “베를린필과 베토벤이나 브람스를 연주했다 생각해보라. 말도 못하게 부담이 됐을 터지만, 진은숙 작품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모두 처음인데 나만 연주해본 곡이었다. 내가 원하는 템포, 음악적인 방향, 만들고 싶은 그림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긴장감 없이 무대를 즐길 수 있었던 이유다.
‘꿈의 무대’에서 연주하는 김선욱의 얼굴에도 기쁨이 드러났다. “되게 즐거웠다.” 그는 “오케스트라 모든 단원, 지휘자, 스태프들이 완벽하게 준비돼 있었다”고 전했다. “이전 연주 땐 이 곡을 연습할 때 단원 중 몇 명이 꼭 지휘자나 작곡가에게 와서 ‘이 부분은 연주 못 한다’고 상의하곤 했지만, 베를린필은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김선욱과 베를린필은 20분짜리 곡을 세 번에 걸쳐 6시간 정도 연습하고 무대에 올랐다고 했다.
김선욱은 “현존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매력의 정점을 느꼈다”고 했다. “모차르트·베토벤 같은 고전 작곡가는 이미 합의된 지점이 있어 연주가 획일적이다. 하지만 현대음악은 그 기준이 없고 모든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제까지 연주 열 번이 다 달랐다.”
앙코르로는 브람스 인터메조(작품번호 118-2)를 들려주며 21세기 음악과는 또 다른 면모를 청중에게 소개했다. 김선욱은 “연주 전 몇몇 단원이 앙코르곡은 뭔지 물어보더라. 현대 음악이 아닌 곡을 어떻게 치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베를린필은 이번 연주 등 진은숙의 작품만 담은 음반을 2년 후 발매할 예정이다.
김선욱은 “기분이 정말 좋지만, 오늘까지일 듯”이라며 “내일부터 지휘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 1월 KBS교향악단과 지휘자로 데뷔한 김선욱은 7월 29일 KBS교향악단을 다시 지휘하며 슈베르트 9번 교향곡으로 두 번째 무대에 오른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