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사회2팀장의 픽 : 치명적 실수
프로스포츠에서 ‘비디오 보조 심판(VARㆍVideo Assistant Referees)’은 이제 익숙합니다. 스포츠 중계에서도 애매한 판정이 나온 순간은 사방팔방에서 찍힌 영상으로 다시 보여줍니다. 시청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듯, 결정적인 순간이 포착될 때까지 영상을 돌리고 또 돌립니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는 이미 비디오 판독 시스템의 구성원입니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흘렀습니다. 요즘 형사들에겐 새로운 직업병이 추가됐답니다. 바로 안과 질환입니다. 사건을 해결하려면 낮이고 밤이고 CCTV를 들여다봐야 하니 눈이 상하는 겁니다. 주변 지인 중에 형사님이 계신다면 눈 영양제가 좋은 선물이 될 겁니다.
이런 ‘격변기’에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이 터졌습니다. 지난해 11월의 일입니다. 택시 기사를 폭행한 장면은 블랙박스에 찍혔습니다. 그런데, 최초 신고 때 경찰은 그 영상을 못 구했습니다. ‘전용 뷰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흔치 않은 모델의 블랙박스여서 SD카드를 넣었는데도 파일이 없는 거로 나왔답니다.
그런데, 택시기사는 전문 업체를 찾아가 영상을 되살리고 그걸 스마트폰으로 촬영했습니다. 최근 공개된 멱살 잡는 영상입니다. 당시 택시기사가 영상을 경찰에 보여줬는데, 경찰은 “차 안 움직이네요. 못 본 거로 합시다”라는 취지로 사건을 끝냈다고 합니다.
사건 해결하려고 눈이 빠지게 CCTV를 찾아다니는 경찰서에서 일반 업체도 쉽게 재생하는 블랙박스 SD카드를 놓쳤다? 눈앞의 증거를 발로 차고 다니는 건가요? 더 황당한 건, ‘봐주기’ 의혹이 터진 이후 지난해 말 김창룡 경찰청장의 공개 발언입니다. 김 청장은 “관련자 진술과 판례에 따라 처리했다”며 “내사 종결에 잘못된 부분은 없다고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VAR가 대세인 시대에, 집에서 쉬는 옛날 심판들만 찾아다닌 셈입니다. 이러니 ‘봐주려고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라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 겁니다. 만약 실수라고 해도 치명적입니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