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오앤택 통해 화이자 백신 공급이 가능합니다.”
서울의 무역업체 A사는 지난달 솔깃한 이메일을 받았다. 발신인은 자신을 독일 의료산업 거물인 H박사의 사업 동료로 소개했다. 그러면서 화이자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기본 100만병 이상 공급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가격도 제시했다. 국내에서 백신 보릿고개 논란이 터진 이후다. 발신인은 H박사와 대부호를 통해 독일 바이오앤텍, 아스트라제네카와 ‘줄’이 닿는다고 했다. A사는 잘만 성사되면,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정부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한 병으로 최대 12명까지 맞출 수 있다. 100만병이면 1200만회에 달한다.
화상회의까지 제안한 중개인
하지만 A사에 접근한 해외 무역중개인은 ‘가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현재 화이자나 아스트라제네카 등은 각국 중앙정부, 코백스와 같은 국제기구에만 백신을 공급하고 있다. 제3의 경로를 통한 유통·판매는 승인되지 않아 아예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코로나19 범유행 상황 속 백신을 확보하려는 국가는 줄 섰다.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굳이 제3의 경로를 둬 공급망을 분산시킬 이유가 없다.
대부분 가짜거나 해프닝으로 끝나
불안정한 백신 수급 상황을 틈타 이런 류의 사기 수법이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뿐이 아니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 인터폴은 지난 3월 가짜 백신 범죄에 대해 경고했다. 온라인에서 백신을 직접 구매했다 피해를 본 사례가 늘면서다. 인터폴은 “범죄자들은 빠르게 돈을 벌려고 사람의 두려움을 노려왔다”며 “가짜 백신은 가장 최근의 사기범죄”라고 말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대란이 일자 마스크 공급사기가 비일비재하게 터졌다.
사기·해프닝에 휘말릴 수도
하지만 3일 정부는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구매 절차를 추진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 역시 공식 유통경로가 아니라서다. 자연히 백신 품질도 의심된다. 한국화이자는 해당 무역업체 제안의 경우 화이자 제품 거래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화이자는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인터폴과도 협력하기로 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 반장은 “(화이자 백신 주선 건은) 대구시에서 별도 계약을 한 것이 아니다"라며 “대구시의사회·메디시티대구협의회 등이 (외국 무역업체와) 접촉했고 이후 대구시를 거쳐 정부에 ‘도입을 협의해달라’는 요청이 온 사안이라 계약이 이뤄진 부분은 없다”고 설명했다.
"성공 가능성 크다고 판단" … 근거는 못 대
메디시티 협의회 관계자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역회사의 제안이)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일을 진행하며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협의회측은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비밀유지 약속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민욱·이태윤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