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허버허버’ ‘오조오억’이란 인터넷 조어도 남혐 논란에 휘말렸다. 각각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나 숫자를 과장할 때 관용어처럼 쓰는 표현들이다. 웹툰 ‘바른생활 길잡이’는 불과 한 컷에 ‘허버’란 단어를 썼다가 '남혐 웹툰'으로 공격받았다. 교사들이 비밀단체를 조직해 페미니즘 사상을 주입하고 있으니 발본색원해 달라고 청원하는 일명 ‘페미게이트’도 터졌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후원하는 어린이 독서모임에서 페미니즘 도서를 다루고, 페미니즘 성향 행사 등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후원을 끊겠다는 이들도 나왔다. 재단은 “해당 행사ㆍ모임과 관련 없다”는 해명 글을 올렸다. ‘페미니즘 손절’ 선언을 한 셈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페미니즘 흐름이 공고해지면서 그에 대한 반격(백래시)도 심해지고 있다. 과거 주로 남성 이용자가 많은 게임업계에서 행해지던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전방위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온라인 소비자운동 형식을 빌려 기업을 압박하며 실력행사를 한다. 남초 커뮤티니, ‘반페미니즘’을 먹잇감 삼는 유튜버 등이 논란을 키우고, 언론 보도가 나오거나 기업이 사과하면 ‘한 건 했다’는 ‘온라인 효능감’을 동력 삼아 다음 좌표를 찍는 식이다. 가령 집게 손 논란의 중심이 된 GS25의 경우, 직전에 한 점주가 "페미니스트를 사절한다"는 알바 채용공고를 올렸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회사에서도 제재를 받은 일이 있다.
이들은 ‘페미니즘=남혐=사회악’이고, 이제는 남성이 역차별당하고 있으며, 여혐이 문제라면 남혐도 문제라는 식의 논리를 펴지만 근거 없는 얘기다. 알다시피 20대 역차별론은 기성세대 남성보다 전체 파이가 줄면서 생기는 박탈감을 사회구조 아닌 또래 여성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여성뿐 아니라 소수자 인권을 존중하고 차별을 없애자는 페미니즘을 남혐으로 모는 것 또한 의도적 오독이다. 여혐도, 남혐도 문제인 건 맞지만 “여성은 열등한 성”이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여혐의 역사를, 신조어 한두 개나 집게손가락 남혐과 등치시킬 순 없다.
지금 백래시가 터져 나오는 데는, 4ㆍ7 재·보선 전후 2030 남성에게 구애하면서 성 대립을 부추긴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당장은 표몰이에 도움이 될지 모르나, 젠더 갈등이 심해지면 그것을 수습하는 일도 정치의 몫일 텐데 뒷감당을 어찌하려는지 의문이다. 사실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는 ‘정체성 정치’에 대한 피로감과 반감을 자극해 집권에 성공한 것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리고 트럼프식 백인우월주의가 불러온 민주주의의 훼손, 사회분열상은 익히 아는 바다.
페미니즘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과대 대표된 인터넷 여론몰이, 억지주장과 마녀사냥을 ‘논란’으로 대접하고, 굴복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평론가 최태섭씨는 “유럽 축구 경기장에 훌리건(난동꾼 광팬)이 난입해도 카메라는 그들을 비추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누군가 ‘어그로(억지 분란 일으키기)’를 끌면 ‘먹금(먹이금지, 무대응)’하라는 자정용 가이드라인이 있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