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경기도 용인 수지에 위치한 카페 ‘책가옥’의 SNS에 올라온 공지에 음악팬들이 술렁였다. 함께 붙은 해시태그 ‘#이승환콘서트’ 때문이다. ‘공연의 신’ 이승환이 50석 동네 커피숍에 뜬다는 소식에 역대급 ‘피켓팅’(피 튀는 티켓 경쟁)이 예상됐다. 지난 21일 1인 1매 제한(장당 18만7000원)으로 열린 좌석 예매는 1초 만에 마감됐다.
카페 겸 공연장 연 이두헌 대표
수준급 작은 무대 마련하고 싶어
평생 번 돈 다 쏟아 ‘책가옥’ 건축
완벽한 방음·흡음, 라이브 녹음도
쉬지 않고 쓴 곡으로 가을엔 신보
고딕 성당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삼각 지붕에 빨간 벽돌 외관, 웅장한 삼나무 문이 이채로운 책가옥은 지난해 2월 문을 열었다. 띄엄띄엄 단독주택과 식당, 창고형 건물이 자리한 한적한 동네에 총 높이 11m, 내부 층고 7m의 단층 건물로 지었다. 카페라기엔 단을 높인 무대가 널찍하니 애초부터 소극장으로 기획한 모양새다. 미국의 유명 팝듀오 ‘홀 앤 오츠’ 출신 대릴 홀이 운영하는 ‘대릴스 하우스(Daryl’s House)’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뉴욕주 외딴 오두막에다 친분 있는 뮤지션을 불러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려주는 걸 5~6년 전 유튜브로 보고 ‘이거다’ 싶었다. 설 만한 무대가 점점 적어지는데. 작은 공간이라도 스튜디오 공연만큼 수준 있게 할 수 있다면….”
40년 가까운 음악활동과 13년간 방배동 와인 바 하며 번 돈을 모두 이 공간에 쏟았다. 10여년 간 가족처럼 지내온 유희열 가구작가에게 의뢰해 클래식 기타 상판 만드는 캐나다산 목재로 천정을 두르는 등 방음·흡음 시설에 완벽을 기했다. 책가옥이란 이름에 걸맞게 선반엔 다채로운 서적과 손때 묻은 펜더 기타가 비치돼 있다. “외관부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라이브 녹음까지 24채널로 할 수 있게 구성했다”고 했다.
“1983년 만 스물도 안 된 친구들끼리 아마추어로 시작한 밴드라서 당시엔 인기란 거 실감도 못 했다. 제대로 악법도 모르고 쓴 곡들인데 이제 보면 참신한 조성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김범수·성시경 등의 리메이크 덕에 꾸준히 사랑받았고 ‘풍선’(작사 이두헌, 작곡 김성호) 같은 경우 이젠 동방신기의 오리지널 곡인 줄 알더라. (웃음)”
밴드 해체 후 미국에 유학 갔다 돌아온 그는 십수 년 전부터 커피에 빠졌다. 일본의 커피 명인 다이보 가쓰지에게서 영향받은 로스팅 기법으로 손수 소량으로 원두를 골라 볶고 내리기 시작했다. “디테일 차이를 깨우치느라 갖다 버린 커피만 해도 수십 수백 ㎏ 될 것”이란다. 지금은 카페 단골뿐 아니라 책가옥 브랜드 커피를 정기 주문하는 매니어들도 많다. “결국 음식은 사람과의 관계다. 소주 마실 때와 와인 마실 때 하는 이야기 다르고, 알코올 없이 커피로 만나는 사람이 다르더라. 그 차이가 차츰 나를 변화시켜 여기까지 왔다.”
또 하나, 15년째 음악과 리더십을 주제로 대기업 초청 강사로 일한 경험도 삶을 바꿨단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 일가를 이룬 분들이 삶에 대해 보이는 예의 같은 게 있다. 돌아보니 내가 그런 존중이 부족한 채 젊었을 땐 막살았더라. 나희덕 시인이 어느 책에서 ‘장인(匠人)으로서의 엄격함과 예술가로서의 파격’을 말했는데, 나도 그렇게 나이 먹고 싶다. 20대 같은 호흡을 내진 못 해도 60엔 그 나이에 맞는 소리를 내고 싶어 쉬지 않고 곡을 쓴다.”
그런 의지를 담아 내후년 결성 40주년을 맞는 ‘다섯손가락’의 컴백 신보도 작업 중이다. 보컬 임형순과 건반 최태완 등 원년 멤버에 현재 ‘위대한 탄생’에서 활약 중인 베이스 이태윤과 단골 세션 드러머 장혁까지 ‘완전체’로 뭉친다. 타이틀 곡 제목은 ‘나는 나이기에 아름다운 것’.
“올가을쯤 신보 나오면 다섯손가락도 책가옥 무대에 선다. 이번 이승환 공연을 계기로 더 알려지면, 예컨대 아이유 같은 이도 와서 공연할 수 있지 않을까. 백건우 선생님을 모시고 듣는 그 나이의 슈만은 또 어떨까. 외국 밴드가 방문해서 ‘여기 꼭 서고 싶었다’ 하는 공간으로 계속 만들어가겠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