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 혁신전략정책연구센터는 글로벌 학술정보·특허솔루션 전문기업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옛 톰슨로이터)와 공동으로 ‘글로벌 AI 혁신 경쟁: 현재와 미래’ 리포트를 25일 발간했다. AI의 국가별 기술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연구 자료다.
연구진은 최근 10년간 특허 분석을 통해 국가별 AI 기술 혁신의 수준을 분석했다. 세계 AI 특허의 92%(14만7000여건)가 2010~2019년 등록돼 최근 AI 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한국의 AI 특허 개수는 중국의 7% 수준이었다. 중국은 지난 2017년 신세대 인공지능 개발 계획을 발표한 뒤 이 분야에 1500억 달러(약 160조원)를 투자했거나 투자하고 있다. 한국 AI 투자 계획(2조2000억원)의 약 70배에 달한다.
기술 영향력은 미국·캐나다·영국 순
한국은 특허의 질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연구진은 특허 피인용 수준과 해외출연 여부, 특허 유효기간 등을 기준으로 특허영향력지수(CPI)를 산출했다. 각국의 AI 특허 중 영향력이 상위 10%인 특허의 비율을 가려내, 이를 기준으로 AI의 질적 수준을 평가한 것이다.
미국이 보유한 AI 발명 특허가 43%로 상위 10%를 차지해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했다. 캐나다(27%)와 영국(13%), 인도(13%), 대만(11%)이 뒤를 이었다.
양적으로 세계 최대 AI 특허 보유국인 중국은 영향력 측면에서는 순위가 뒤로 밀렸다. 미국보다 특허는 3.5배 이상 보유하고 있지만, 특허의 질이 낮았다(5%). 중국이 보유한 특허 중 96%가 자국 특허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한국·일본·대만 등의 자국 특허 비율이 60% 수준이다.
한국 AI 특허의 영향력(8%)은 상위 10개국 평균(14%)보다 낮았다. 김진우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코리아 자문은 “한국 AI 연구는 양적으로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질적인 성과는 AI 선도 국가 대비 낮은 수준”이라며 “이제는 기술력 기반의 질적 성장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학→출연연→기업 ‘AI 생태계’가 좌우
AI 생태계는 대학→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기업으로 이어진다. 대학은 AI 원천기술을 연구하고 인재를 양성한다. 이를 기반으로 출연연은 특정 분야의 연구개발(R&D)을 심화한다면, 기업은 기술 상용화를 추구한다. 김진우 자문은 “미국·캐나다는 이 같은 AI 생태계의 3요소가 골고루 발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미국 출연연이 획득한 특허 중 상위 10%에 포함되는 특허 비중은 48.5%였다. 미국 기업(44.2%)과 대학(37.1%)에서도 일단 특허를 내면 2~3개 중 1개는 상위 10%에 포함됐다. 반면 중국은 대학(6%)·출연연(5.2%)·기업(3.5%)이 획득한 특허가 모두 전반적으로 성과가 저조한 ‘장롱 특허’였다.
한국의 문제는 대학의 AI 특허 성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2.8%). 출연연(9.5%)·기업(11.8%) 역량은 다른 국가 대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결국 한국이 AI 기술력을 확보하려면 대학의 AI 연구 성과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각국은 AI 기술 중에서도 강점을 보유한 분야가 다소 달랐다. 독일·영국 등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는 로보틱스 관련 기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한국은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강점이 있었다. 이에 비해 인지체계나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연구 등의 분야에선 발명 출원이 소규모였다.
김원준 KAIST 혁신전략정책연구센터장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1%를 차지하는 10여 개 국가가 전체 AI 발명(14만7000여 건)의 92%를 독점하고 있다”며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는 AI 생태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AI 인력의 확충과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