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체서피크 만은 대표적인 게 생산지다. 북쪽은 메릴랜드주에, 남쪽은 버지니아주에 걸쳐 있다. 냉장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인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게는 주로 이 지역 주변에서 소비됐다. 게 요리가 미국 전역에 퍼진 건 냉장 기술이 발달한 1920년대 이후다.
크랩 케이크의 유례는 다양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그중 유력하다. 체서피크 만에 살던 원주민들은 게 껍데기와 살을 분리해 여러 재료와 섞어 구워 먹었다. 이후 정착민들도 원주민의 방식을 차용해서 게 요리를 즐겼다고 한다. 크랩 케이크라는 용어가 공식화된 것은 1930년 요리사 크로스비 게이지가 자신의 요리책에 게살과 향신료·빵가루를 섞은 레시피를 체서피크 만 인접 도시 이름을 붙여 ‘볼티모어 크랩 케이크’라고 소개하면서부터다. 이 책은 뉴욕 세계 요리책 페어에 선정돼 명성을 얻었다. 이후 메릴랜드 지역에서 이 레시피를 재창조한 게 요리를 적극적으로 판매하며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는 고유명사처럼 굳어져 미국 전역에 퍼졌다. 역사가 짧은 탓에 전통 깊은 요리를 찾기 쉽지 않은 미국에서 이 정도 유서 있는 요리는 드물다.
방미한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대통령과 37분간 오찬 겸 단독 정상회담을 했다. 메뉴는 바로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였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문 대통령의 식성을 고려한 메뉴라고 한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20분간 햄버거 오찬을 한 것에 비하면 괜찮은 대접이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최고의 순방이었고 최고의 회담이었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역대급” “건국이래 최대 성과”라는 극찬이 나왔다. 백신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등 성과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 국민을 위한 시급한 백신 확보라든가 대북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미지수다. 방미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보다, 1년 남은 문 대통령의 임기 중 풀어야 할 숙제를 다시금 확인한 것은 아닐까. 크랩 케이크 접대에 만족만 할 수 없는 이유다.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