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문자폭탄은 ‘여유 있는 마음으로 바라볼’ 표현 수단이 아니다. 단호하게 대처하고 척결해야 할 폭력이다.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 초청 토론회(2017년 4월 MBN 개최)에서 극성 지지자들이 당내 경선 상대 후보에 가한 문자폭탄과 악플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이다. 2018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격한 표현을 하는 지지자들에게 전할 말이 없냐”는 질문에는 “저와 생각이 같든 다르든 유권자인 국민들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에서 참패한 후에 치른 민주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문자폭탄을 ‘민심의 소리’라고 하는 옹호론이 활보했다. 그러나 문자폭탄과 그에 대한 방관과 옹호는 디지털시대의 시대정신에 반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언어공격으로 타인 생각 통제
디지털시대의 가치 부정·훼손
코로나19 바이러스 같은 재앙
디지털 시대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소통방식을 출현시켰다. 하고 싶은 말을 자신이 직접 정보로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유통시키는 정보의 주권자가 된 것이다. 자유로운 정보 생산과 이용은 소수 엘리트가 정보를 독점하고 권력을 행사하던 수직적 사회에서 탈피하여 수평적 사회로 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특정 자격, 신분, 성별, 직업, 재산,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기의사를 표현하고, 사회적 이슈와 공동체 운영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투명한 공개사회. 소통의 공간을 넓혀 풀뿌리 민주주의 시대가 꽃필 것으로 예견되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 20년도 안 되어 오히려 민주사회로 발전하는 데 부정적인 행태들이 나타났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여론을 조작하고, 댓글로 민의를 변질시키고, 가짜 정보로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결속을 손상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위협과 강압의 언어공격을 통해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획일적으로 통제하려는 문자폭탄은 디지털 시대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다. 다른 생각, 다른 의견, 다른 토론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산주의 체제와는 다르게 생각이 동일하지 않은 타자와 함께 공존과 공생을 전제하는 민주사회의 철학을 부정하는 것이다. 타자를 현존하게 하지 않고, 타자를 경청하지 않고, 타자를 추방하는 사회(『타자의 추방』, 한병철)는 정상이 아니다. 문자폭탄은 양념도 민심도 아니다. 폭력이고 재앙이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범죄행위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못지않게 우리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 척결해야 할 디지털 시대의 백해무익한 바이러스다.
김정기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