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은 나름 꽤 이것저것 치열하게 보낸 듯한데 옅어진 기억으로 메모의 도움이 없다면 막상 어느 것 하나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살아온 날들이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 탐색해야 할 자료들이 꽤 많이 쌓인 것일지도, 혹은 그 많은 것들을 차곡차곡 쌓다 이젠 귀찮아진 뇌가 게으름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는 기념일
새삼 인생의 유한 느끼게 돼
천재가 남긴 뜻이 울림 주듯
다음 세대에 공명, 확장되길
좀 더 긴 주기의 일깨움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입학식, 졸업식에서 얻어집니다. 매일같이 보아 차이를 느끼지 못하다 몇 년의 시간 동안 자란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을 하다가도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기에 좀 더 신경써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죄책감처럼 몰려옵니다. 한품에 들어오던 작은 생명이 훌쩍 커버려 대견함보다 내 품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아쉬움을 저만 느끼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서운함은 감출 수 없습니다.
10년의 시간은 어떻게 반추해 볼 수 있을까요? 부모님 댁 벽에 걸린 회갑, 칠순, 팔순의 생신에 모인 가족들의 사진을 통해서 알게 되는 듯 합니다. 안겨있던 아이들이 자라고 다시 성인이 되며 어느덧 흰머리가 더욱 익숙해지신 어르신의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뿐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삶의 태도는 상처를 덜 받고 살아가려면 꼭 필요하기에 이를 얻으려 나름 적응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좀 더 긴밀히 돌아보았다면 후회가 덜했을지 모른다는 회한은 가지지 못한 형질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섭니다. 묵묵히 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기가 주어지지 않아도 더 자주 돌아보아야 했음을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생존하기 위해 무한한 낙관주의를 체득한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
그렇다해도 유한한 한 사람의 삶의 전체를 되짚어 보는 것은 평균으로 보아도 한 세기를 채우기도 어려운 것이 현생인류의 한계입니다. 그것보다 생애를 넘어선 뜻이 남는 것을 기대해 보는 것이 우리 종이 가진 영속되길 바라는 문명의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앞으로 5년 후 완성된다는 스페인 건축가의 유작은 그의 사망 100주년을 목표로 지금도 공사 중에 있다 합니다. 천재의 생애를 돌아보는 것보다 남겨진 그의 뜻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처럼, 나보다 나의 뜻이 남아 누군가에게 이어지는 것을 꿈꾸어 봅니다. 각자 모두의 꿈의 크기가 그의 생애를 넘어설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넘어서는 크기만큼의 공감이 그다음 세대 한 명 한 명에게 이어져 공명되어진다면 우리 문명의 성숙함이 얼마나 더 크게 영글 것인가 공상하며 반성의 의기소침 후 다시 조금은 행복해진 것을 보면 저는 역시 낙관주의자인 듯합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