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이상언의 시시각각] 밥은 제대로 먹입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5.2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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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사가 SNS에 올린 부대 급식의 모습.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캡처]

밥, 오징어가 없는 ‘오징어 맛’ 국, 김치볶음, 얇은 조미 김 봉지. 이게 전부였다. 만약 어떤 회사 식당에서 이렇게 밥이 나와 소셜미디어(SNS)에 사진이 올랐다면? 총무팀장과 그 위의 경영지원 책임자 자리가 멀쩡하기 쉽지 않다. 후원자 성금 받는 구호단체에서 독거노인에게 이런 밥을 제공했다면? ‘인권 침해’ 비난과 후원자들 탈퇴가 예상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제기될 수도 있다. 건설 현장에서 그랬다면? “이걸 먹고 어떻게 일하냐, 우리를 개돼지로 아느냐고 소리치는 인부들에게 현장 소장이 백배 사죄하고 추가 일당을 주지 않으면 공사가 중단됐을 것.” 건설사 사장의 말이다.
 
그 밥은 실제로 계룡대에 있는 격리 장병들에게 제공됐다.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20대 장정들에게. 지난 16일 그중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다음 날 국방부는 “확인했더니 그런 것은 없었다”며 그보다 약간 덜 부실해 보이는 밥과 밥찬(김치와 달걀부침 추가) 사진 석 장을 공개했다. “도긴개긴”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18일 국방부 대변인이 “확인을 잘못했다. 16일 사진이 가짜가 아니었다”고 해명을 번복했다. 

부실 급식은 '인권 침해' 제소 감
정부의 무능·무책임·무성의 소산
최상의 대우가 최고의 헌신 바탕

①무능: “제보 사진을 보면 식판이 두 개다. 1인 격리 병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왜 애초에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18일 국방부 브리핑 현장에서 한 기자가 던진 질문이다. 전날 국방부는 1인 격리자 8명에 대해 전수조사했다며 세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집단 격리(코호트 격리)돼 있는 병사 100여 명에 대한 조사가 아니었다. 질문한 기자의 말처럼 16일 사진에 플라스틱 식판 두 개가 놓여 있다. 1인 격리자 밥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부대 지휘관과 국방부 간부가 사진을 눈여겨보지 않았거나 그 정도의 추리력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가 안보가 심히 걱정스럽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의 답변은 이랬다. “도시락 사진이 제보에 올라왔기 때문에 1인 격리하고 있는 8명에 관해 확인하다 보니 거기까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이런 말씀을 드린다.” 조사해 보고하는 부대와 보고받는 국방부 간부 모두 ‘식판 두 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② 무책임: 서욱 국방부 장관은 어떤 생각일까? 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상황을 전했다. “장관님께서는 지금 사안에 대해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보고를 받자마자 감사반에 지시해 어제오늘 계룡대 근무지원단에 대한 현장감사가 진행 중입니다.” 엄중 인식과 조사 지시. 군 경계가 뚫렸을 때도, 성폭행 사건이 터졌을 때도 그랬다. 말로 때우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


군 부실 급식 폭로는 한 달째 진행 중이다. 병사들이 SNS로 공개하는 사진들이 기폭제 역할을 한다. 지휘관들은 스마트폰 탓을 한다. 예전처럼 스마트폰 못 쓰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낡은 생각이 ‘이 정도면 먹을 만한 것 아닌가. 옛날에 우리 때는…’으로 이어진다.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다. 밥 문제의 최종 책임도 그에게 있다. 이건 ‘죽비 맞고 정신이 번쩍 들’ 일이 아닌가.
 
③ 무성의: 너무 먹어 망한 회사가 없고, 못 먹고도 이긴 전쟁이 없다. 병사가 배를 곯으니 천하의 나폴레옹도 소용없었다. 70만의 프랑스 원정군 중 90%가 숨진 모스크바 전투(1812년)가 입증했다. 비스킷, 설탕 옷 입힌 동그란 초콜릿, 곡물이 든 초콜릿 바. 모두 군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큰 단추를 매단 더플코트, 방수가 되는 버버리사의 개버딘 천은 영국 군인 체온 보호를 위해 개발됐다. 그 군이 세계를 누볐다. 10여 년 전부터 영국 군인은 땀이 덜 차는 고어텍스 비옷을 입는다. 
 
최상의 대우가 최고의 헌신을 낳는다. 그게 어렵다면 밥이라도 제대로 먹게끔 하자. 가마니 끓여 먹던 영화 ‘남한산성’의 병졸이 어른거린다. 이젠 그 꼴에서 벗어날 수준은 되지 않았나.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