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습한 공기에 섞인 악취가 풍겨왔다. 서울 난지도에서 날아오는 쓰레기 냄새였다. 저녁 무렵 교문을 나갈 즈음이면 당인리 쪽으로 붉게 타는 노을이 너무 황홀해서 까닭 없이 슬펐다. 1981년 삼수 끝에 늦깎이로 들어간 H대의 첫인상은 그랬다. 그렇게 맞이한 첫 학기도 거의 끝나갈 무렵, 어디선가 둥둥둥 하는 풍물소리가 들려왔다. 여의도 방향이었다. ‘국풍 81’이었다.
사상 최대의 관제 축제
국민 동원 위해 만든 전통
전통문화에 새 인식 필요
‘국풍 81’이 열린 시기는 광주민주화운동 1주기가 되는 시점이자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신군부는 ‘국풍 81’을 통해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감추고 올림픽으로 국민의 시선을 돌리고자 했던 것이다. 주최 측은 1970년대 이후 민중문화운동의 선두에 섰던 대학 풍물패들을 포섭하려고 했는데, 내가 아는 모교의 한 풍물패 출신은 자신들도 참여 제안을 받았지만 단박에 거절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행사장에는 가수 이용의 노래 ‘바람이려오’가 울려 퍼졌고, 충무김밥 같은 향토 음식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아무튼 ‘국풍 81’은 유사 이래 최대의 관제 축제였다.
‘한국적 디자인’의 정체성
박정희는 한국 역사를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연쇄사”(『국가와 혁명과 나』)라고 자조했지만, 권력을 잡고난 뒤로는 ‘민족문화의 창달’을 주장했다. 수출 주도의 경제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통합하고 동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는데, 그것을 ‘위대한 민족문화’에서 찾았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문화의 대부분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만들어진 전통
20년 전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책으로 주목을 받는 바 있는 철학자 탁석산은 최근에 펴낸 『한국적인 것은 없다』에서 고정된 실체로서의 전통이란 없다고 말한다. 사실 탁석산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다. 이미 서구의 학자들은 전통이 ‘선별된 것’(레이먼드 윌리엄스)이며 심지어는 ‘발명된 것’(에릭 홉스봄)이라고 주장해왔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이란 대부분 박정희 시대와 ‘국풍 81’ 같은 행사를 통해 선별되고 심지어는 발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은 소중하다. 그러나 전통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인식은 더욱 소중하다. 전통이란 우리 생각과는 달리 그리 전통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5월, 그 날이 다시오면 광주민주화운동과 함께 40년 전의 ‘국풍 81’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