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우길 ② 남파랑길 부산 2코스
이 모든 부산을 아울러 부산은 길이다. 계단을 따라 달동네 오르내리고, 바다 바라보며 해안을 걷다 보면 부산의 주인공은 길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부산에서도 영도를 걷고 왔다. 말하자면 영도는 부산의 축소판이다.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계단도 많고, 길도 많다. 하여 이야기도 많다.
영도할매 이야기 깃든 봉래산
태종대 자갈마당의 제주 해녀
절벽 위에 들어선 흰여울마을
내딛는 걸음마다 이야기 가득
부산에는 길이 많다. 동해안 종주 트레일 ‘해파랑길’도, 남해안 종주 트레일 ‘남파랑길’도 모두 부산에서 출발한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770㎞ 이어진 길이 해파랑길이고,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남해안 1470㎞를 연결한 길이 남파랑길이다. 해파랑이 갖고 있던 국내 최장 트레일 기록을 지난해 11월 개통한 남파랑길이 거뜬히 깼다.
영도를 걷는 길은 남파랑길에 있다. 남파랑길 70개 코스 중에서 5개 코스가 부산에 있는데, 2코스가 영도를 한 바퀴 돌아 나온다. 부산역에서 시작해 부산대교로 영도에 들어갔다가 영도대교로 나온다. 전체 길이는 14.5㎞다.
영도에는 남파랑길 말고도 길이 많다. 부산 향토 트레일 ‘부산갈맷길’도 영도를 돌아 나온다. 부산갈맷길 3-3코스가 남파랑길 부산 2코스와 대부분 겹친다. 해양수산부가 조성한 ‘절영해안산책로’,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원도심 스토리투어 코스로 개발한 ‘깡깡이길’도 남파랑길 2코스 일부 구간과 중복된다. 이정표에 길 표식이 여러 개 붙어 있는 까닭이다. 영도에서는 길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 영도를 걸었다는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영도할매
봉래산에 들었다. 영도할매 전설이 깃든 곳이다. ‘영도 사람이 영도를 떠나면 영도할매의 미움을 사 망한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길라잡이로 나선 ‘부산의 아름다운 길’ 이동재(66) 전무이사가 마침 영도 출신이었다. 전설이 맞느냐 물었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망했잖아요.” 봉래산 정상에 영도할매 바위가 있다는데, 길은 정상을 오르지 않았다.
봉래산에서 내려온 길은 태종대로 향한다. 지금은 중간 구간이 공사 중이어서 태종대 입구까지 자동차로 이동해야 한다. 태종대는 신라 무열왕의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명승지다. 영도등대 아래 자갈마당에서 해녀가 해산물을 팔고 있었다. 영도는 ‘바깥물질’ 하러 나온 제주 해녀의 전초 기지였다. 지금도 영도 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제주도 출신이라고 한다.
두 번째 송도
이제 영도 남쪽 해안을 걸을 차례다. 바위와 자갈이 널브러진 해안이 계속되는데, 이 해안을 부산에선 ‘이송도’라 부른다. 이송도를 알려면 먼저 송도를 알아야 한다. 영도 해안에 서면 바다 건너편에 송도 해수욕장이 보인다. 일제가 1913년 국내 최초로 개장한 해수욕장이다. 당시 송도 해수욕장은 요즘 말로 핫 플레이스였다. 영도 사람들이 바다 건너 핫 플레이스를 바라만 보다 영도 해변도 못지않다는 뜻으로 두 번째 송도, 즉 이송도라 이름 지었다.
이송도 앞바다에 배들이 점점이 떠 있다. 선박 주차장 묘박지(錨泊地)다. 화물선이 이 바다에서 부산항에 정박할 차례를 기다린다. 무질서하게 있는 것 같지만, 배마다 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림 같은 풍경이나 실상은 아름답지 않다. 화물선이 오래 정박해 있다는 건 그만큼 싣고 나갈 화물이 많지 않다는 뜻이란다.
이송도 길을 한참 걷다 보면 터널이 나온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난리가 난 명소다. 터널 안을 알록달록한 조명으로 단장했는데, 막상 인기가 있는 포인트는 반대편 터널 입구다. 오후 시간 터널 안쪽에서 역광을 받아 사진을 찍으면 소위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일부러 오후 시간에 맞춰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아주 긴 줄이 서 있었다.
피란민 문재인
깡깡 우는 소리
깡깡이마을에서 나오면 영도대교다. 코로나 사태로 영도대교 도개 행사가 중단돼 아쉽다. 이제 다리를 건너 자갈치시장이 있는 남포동에 들어가면 길이 끝난다. 걸었던 길은 막상 길지 않은데,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절대 짧지 않다. 셀카봉 든 젊은 연인이 수레 끄는 꼬부랑 할매 곁을 까르르 웃으며 지나갔다.
◆길 정보
부산=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