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이날 삼성전자 평택 단지에 있는 반도체 3라인 건설현장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대회'에서 “반도체 산업은 기업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경쟁의 시대로 옮겨갔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며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은 선제적 투자로 국내 산업생태계를 더욱 탄탄하게 다지고 글로벌 공급망을 주도해 이 기회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반도체를 사실상의 전략무기로 인식하며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12일에는 삼성전자를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회사 CEO를 화상으로 만나 미국내 반도체 생산 관련 투자를 요구하기도 했다. 미 상무부는 정상회담 바로 전날인 20일 삼성전자 등 반도체 및 자동차 기업들과의 화상 회의를 재차 소집한 상태다. 외교가에선 이를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삼성의 대규모 투자를 요청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는 정상회담을 전후해 20조원 규모의 미국 공장 증설 계획 발표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향후 10년간 510조원 이상을 투자한다”며 “압도적인 투자를 통해 한반도에 세계 최대의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평택과 화성의 생산라인을 대규모로 증설하고, SK하이닉스도 용인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새롭게 구축할 계획”이라는 구체적 계획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민관이 힘을 모은 K반도체 전략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거센 파고를 넘어설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도 반도체 강국을 위해 기업과 일심동체가 되겠다. 기업의 노력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겠다”며 “반도체를 국가 혁신전략기술로 지정해 기술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을 최대 6배까지 확대하고, 연구개발 투자에는 최대 50%를 세액공제하겠다”고 밝혔다. 또 “1조원 이상의 특별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해 기술투자에 저리의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소개했다.
여권의 고위 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투자 압력과 관련한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지원책 발표 차원”이라며 “동시에 국내 생산 거점을 강화해 향후 반도체 경쟁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을 강조한 조치로 이해해달라”고 전했다.
정부가 구상하는 반도체와 백신을 매개로 한 한·미 협력 구상에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역할이 클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현재 노바백스의 백신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위탁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또 청와대 내에선 “이번 회담에서 추가로 모더나 백신의 국내 위탁생산이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모더나의 국내 생산 파트너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날 문 대통령의 삼성전자 방문 일정에는 김기남 부회장이 참석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현재 구속수감 중이다. 각계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건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연설에서 “반도체 경쟁이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있어서 우리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더욱더 높여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충분히 국민의 많은 의견을 들어 판단하겠다”고 했다. 재계와 정치권 주변에선 "5월 19일 석가탄신일과 8·15 광복절 등을 앞두고 문 대통령의 고민이 클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文 대통령과 ‘주먹 인사’ 나눈 이재명=이날 행사에는 여권 차기 주자 중 지지율 1위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참석했다. 이 지사는 15분 일찍 현장에 도착해 문 대통령을 기다렸고, 행사 때는 문 대통령의 바로 뒷줄에 앉았다.
강태화ㆍ김준영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