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값은 71년전 지불했습니다" 참전용사 찾아다니는 남자

중앙일보

입력 2021.05.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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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 대전현충원 현충탑에 대전ㆍ충남 지역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10명이 자리한다. 이곳에서 노구의 용사들의 모습이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된다. 사진은 액자에 담아 현장에서 참전용사들에게 증정된다. 
 
단 사진과 액자값은 받지 않는다. 10명의 용사는 71년 전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내놓고 나라를 지킨 것으로 이미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16일 대전현충원서 6ㆍ25 참전용사 촬영
나라 지킨 용사 10분 모셔 사진으로 보은
라미 현 작가 "용사 예우 위해 언론 취재 사양"
박보검 일병 등 참전용사에게 액자 전달

참전용사를 모셔 사진으로 담는 이 날 행사의 이름은 ‘액자값은 71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이다. 전 세계 6ㆍ25전쟁 참전용사들을 찾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온 라미 현(본명 현효제) 작가가 그간 용사들을 만날 때마다 해왔던 이 말이 이젠 이 행사의 명칭이 됐다. 
 

'프로젝트 솔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를 진행하고 있는 라미 현 작가가 참전용사 사진으로 구성된 달력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라미 현]

 
현 작가는 다음 달 한국전쟁 발발 71주년을 맞아 대전지방보훈청과 함께 대전현충원에 참전용사 10명을 모신다. 
 
참전용사에 보은하자는 취지에 공감한 각 군은 4명씩 의장대 병사를 보내 행사 진행을 돕기로 했다. 16명으로 구성된 의장대가 참전용사들이 현충탑에 입장할 때 도열해 예도(銳刀)로 맞이한다.


또 각 군을 대표하는 장병이 참전용사들에게 사진 액자를 전달할 예정이다. 해군에선 박보검 일병과 천안함 생존 장병인 김현래 상사가 나선다. 육군, 공군, 해병대에선 참전용사 후손 장병이 참여한다.  
 
라미 현 작가의 '프로젝트 솔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 사진. 한국전에 참전한 푸에르토리코(미국 자치령) 용사들. 6만1000명의 푸에르토리코섬 출신이 한국에서 싸웠다. 2018년 5월, 푸에르토리코 한국전 참전용사 사무실에서. [사진제공=라미 현]
라미 현 작가의 '프로젝트 솔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 사진. 영국군 참전용사들. 2018년 2월 어느 날, 영국 버지니아 워터 영국군 참전협회 모임에서. [사진제공=라미 현]
라미 현 작가의 '프로젝트 솔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 사진. 2018년 10월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한국전 참전용사지회(KWVA) 연례모임에서 만난 참전용사 팀 화이트모어와 그의 손녀. [사진제공=라미 현]
라미 현 작가가 지난 2016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육군 군복 사진전'에서 만난 미 해병대 출신 참전용사 쌀 스칼리토를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라미 현]
라미 현 작가가 촬영한 사진 액자를 휠체어에 앉은 한 미군 참전용사에게 건네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의 '참전용사마을'(AFRH·Armed Forces Retirement Home)에서. [사진제공=라미 현]
 
단 촬영은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했다. 71년 전 나라를 위해 싸웠던 이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는 취지에 충실하고 6월 맞이 이벤트성 홍보로 비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 작가는 "몇몇 언론사에서 촬영 현장 공개를 요청했지만, 참전용사와 가족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모두 사양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지난 2017년부터 현 작가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솔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의 일환이기도 하다. 현 작가는 미국, 영국 등 유엔 참전국을 돌며 1400여 명의 참전용사 사진을 찍어 액자를 전달해왔다. 
 
정전 70주년인 2023년까지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살아생전 용사들의 모습을 최대한 많이 남기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작업은 일시 중단된 상태다. 현 작가는 "지금은 국내에서 국군 참전용사를 중심으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오는 9월쯤 미국을 시작으로 다시 해외 촬영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라미 현 작가의 '프로젝트 솔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 사진. 고(故) 백선엽 장군(예비역 대장). 백 장군의 장녀(미국 거주)가 관련 기사를 본 뒤 현 작가에게 연락해 아버지의 촬영을 부탁했다. 2019년 9월 어느 날. [사진제공=라미 현]

 
현 작가는 고(故) 백선엽 장군(6ㆍ25 당시 1사단장 등 역임) 촬영으로 일부 네티즌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참전용사인 백선엽을 찍은 것이지, 그분의 인생 전체를 두고 찍은 게 아니다"며 "6ㆍ25 참전 유공자인 건 사실이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프로젝트 초기에 백 장군을 찍기 위해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지만, 한사코 사양하셨다"며 "그러다가 2019년 미국에 사는 백 장군의 큰 따님이 제 프로젝트 관련 기사를 보고 '촬영해달라'는 연락이 와서 자택과 사무실에서 두 차례 찍게 됐다"고 말했다.
  
이철재ㆍ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