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때부터 걸작인 예술품이란 건 일종의 신화다. 예컨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보물 2010호)는 원래 1930년대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가 수집했던 신라 기와장식 중 하나다. 1972년 기증된 뒤 ‘신라의 미소’로 사랑받는 수막새를 두고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일본인 컬렉터의 수집·기증 없이 우리가 그 매력을 알 수 있었겠나” 묻는다(『명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때 일상용품이었던 자기·소반·조각보 등이 예술적 감상의 대상이 되는 과정엔 예외 없이 컬렉터의 수집과 기증(공공전시 포함)이 뒷받침했고, 이 스토리가 작품의 가치를 드높인다는 관점이다. 일본 열도 폭격 전 세한도 소장자를 찾아가 이를 찾아왔던 손재형 신화를 빼도 작품의 감동이 그대로일지 상상하면 이해가 간다.
정선이 벗을 생각해 그린 ‘인왕제색도’는 조선 후기 노론 벽파의 영수였던 심환지가 소장해 그 문중으로 전해졌다. 이후 언어학자 최원식, 개성 부호 진호섭, 서예가 손재형의 수중을 거쳤다가 이번에 ‘이건희 기증품’으로 국민 품에 안겼다. 아마도 일반인에겐 18세기 당시 탄생 비화보단 한국의 억만장자가 소유했던 ‘컬렉션 1호’란 게 더 솔깃한 대목일 테다. 미술품을 기증받은 각 소장기관이 이 같은 신화를 어떻게 예술적 자산으로 불려갈지 궁금하다.
강혜란 문화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