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소설은 길고 지루해? 뮤지컬에 딱 좋은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2021.05.1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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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말로이가 『전쟁과 평화』를 토대로 작곡ㆍ대본ㆍ편곡한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201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후 파격적 음악, 무대 설정으로 화제가 됐다. 사진은 이달 30일까지 공연하는 유니버설 아트센터 무대. [사진 쇼노트]

레프 톨스토이가 1869년 완성한 소설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559명. 총 4권으로 된 소설이고, 전쟁이 이어진 러시아의 1805~20년을 다루고 있다. 세 가문의 젊은이를 중심으로 수많은 인물이 얽히고설킨다. 역사 소설이면서 성장 문학이고, 가족사이면서 심리 소설이다. 한마디로 복잡하고 복합적이며 긴 산문이다.
 
이 소설을 뮤지컬로 바꾼 미국의 ‘문제적 창작자’ 데이브 말로이(45). 뉴욕 브루클린에서 사는 그는 작곡과 영문학을 공부했다. 음악을 만들고 대본을 쓰며, 무대 위의 배우로 노래와 연기도 한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희한한 무대를 만들어 올린다. 말로이는 『전쟁과 평화』 중 두 번째 책의 5장인 70페이지를 뮤지컬로 바꿔 2012년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2017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다. 제목은 ‘나타샤, 피에르 그리고 1812년의 위대한 혜성’. 말로이는 작곡· 작사· 대본·오케스트레이션을 맡았고 초연에 부유한 귀족 청년 피에르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당시 토니 어워드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두 부문에서 수상한 이 작품은 ‘그레이트 코멧’이라는 제목으로 서울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달 30일까지)이다. 그가 연기한 피에르 역은 홍광호와 케이윌이 맡았다.

‘문제적 창작자’ 데이브 말로이
『전쟁과 평화』 바꾼 ‘그레이트 코멧’
30일까지 유니버설 아트센터 공연

“인물의 변화는 뮤지컬 필수 요소
모비딕 이어 율리시스에도 도전”

데이브 말로이

그는 왜 복잡한 고전 소설을 뮤지컬로 옮겼을까. 본지와 e메일 인터뷰에서 말로이는 “길고 지루하다는 오명을 쓴 고전들은 사실 뮤지컬로 옮기기 딱 좋은 스토리”라고 했다. “크루즈 여행의 배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전쟁과 평화』를 마치 『해리포터』 읽듯 빠져들어 새벽 5시까지 봤다. 마지막을 읽고 나서 기묘하게도 이 이야기가 뮤지컬에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말로이가 뮤지컬로 바꾼 70페이지는 순수한 여성 나타샤가 전장으로 떠난 약혼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유혹에 흔들리는 부분이다. 피에르는 염세적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마지막 순간 1812년의 대혜성을 보며 새로운 인생에 대한 희망을 얻는다. 말로이는 다른 복잡한 이야기를 제거하고 이 부분에 집중했고 아코디언을 비롯한 악기와 전자 음향을 결합해 강렬한 음악 27곡을 만들어냈다.


말로이는 “톨스토이의 소설은 거의 연속극에 가까울 정도로 재미있고 짜릿하다”며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인물의 이러한 ‘변화’는 고전을 뮤지컬로 옮기기에 충분하도록 만드는 요소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나 ‘레미제라블’처럼”이라고 덧붙였다.
 
말로이가 ‘지루함’의 오명을 쓴 고전을 뮤지컬로 옮긴 작품은 또 있다. 그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1851) 또한 뮤지컬로 만들어 2019년 무대에 올렸다. 흰 고래 모비 딕을 맹목적으로 쫓는 인간을 그렸고, 고래 해부학 사전을 연상시키는 정교한 묘사와 복잡한 심리 표현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대학 시절 처음 읽고 이 소설의 복잡한 형식, 실존주의적 주제에 강하게 매료됐다. 긴 시간을 들여서라도 뮤지컬로 옮길만한 요소라 생각해 읽고 또 읽었다. 읽을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점을 발견했다.” 말로이는 이 소설 전체를 4부짜리 뮤지컬로 옮겼다.
 
그는 오래된 예술 작품에서 기존의 뮤지컬이 손댈 시도를 하지 않았던 재료를 포착해낸다. 2010년엔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에 착안해 세 명의 배우가 술을 마시며 연기하는 뮤지컬 ‘세 대의 피아노(Three pianos)’를 무대에 올렸다. 작곡가 라흐마니노프가 겪은 우울증에서 영감 받아 그의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프렐류드(Preludes)’를 만들었다. 말로이는 “옛 작품들에 완전히 꽂히게 되고 오랫동안 사랑하게 되면 새로운 작품으로 만든다”고 했다.
 
말로이의 작업은 최근 미국 공연계의 핫 이슈다. ‘그레이트 코멧’의 초연에서는 객석이 바(bar)로 바뀌어, 술과 음료를 마시는 관객 사이에서 배우가 연기했다. 공연 장소뿐 아니라 작품 스타일도 파격적이다. 2017년 브로드웨이 공연 당시 뉴욕타임스는  “말로이는 은어와 비속어를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충격적 전자 음향을 쓰면서 머나먼 시대의 러시아 러브스토리를 생생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전쟁과 평화』 『모비 딕』에 이어, 어렵기로 악명 높은 또 하나의 소설이 그의 머릿속에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1922년 작품 『율리시스』다. 말로이는 “복잡하고 실험적인 소설을 뮤지컬로 바꾸는 도전을 즐긴다. 『율리시스』를 뮤지컬로 만들어 ‘불가능 소설 3부작’을 완성해볼까 한다”고 했다. 그리고 느낌표를 덧붙여 이런 답을 보냈다. “어떤 이야기든 뮤지컬이 될 수 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