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민주당은 호남당이냐” 또 터진 국민의힘 ‘영남당 논쟁’

중앙일보

입력 2021.05.05 18:01

수정 2021.05.0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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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잡으려면 영남 정당으론 어렵다”(홍문표 의원)
“그럼 송영길 대표의 민주당은 호남당인가”(성일종 의원)
 
6월 전당대회(잠정)를 앞둔 국민의힘이 때아닌 ‘영남당’ 논란으로 시끄럽다. 내년 대선을 짊어질 차기 당 대표를 영남 출신이 맡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이다. 지난달 30일 영남 출신 김기현(울산 남을) 원내대표가 선출되자 당 일각에서 “당 대표마저도 영남 출신이 돼선 안 된다”는 비영남 대표론이 분출하면서 논란은 한층 더 가열됐다.
 
당내에는 이미 대표 경쟁을 비영남 대 영남 주자 구도로 보는 시각이 널리 퍼졌다. 대표 주자로 분류되는 권영세(서울 용산), 홍문표(충남 홍성·예산), 김웅(서울 송파갑) 의원, 나경원(서울 출신) 전 의원이 비영남이고, 주호영(대구 수성갑), 조경태(부산 사하을),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의원은 영남이 지역구다.
 

국민의힘 당원 중에선 영남 지역 당원 비율이 상당하다. 당 안팎에선 당원 70%, 일반여론조사 30%로 치러지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가 영남 여론에 좌우될 것이란 말이 나오기도 한다. 사진은 2016년 8월 9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제4차 전당대회 모습.

 
영남당 논란이 갑자기 나온 건 아니다. 과거에도 보수 정당이 위기에 봉착하거나, 쇄신을 추진할 때 마다 ‘영남 물갈이론’은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지난해 총선에서도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TK(대구·경북) 등 영남에 눈물의 칼을 휘두르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21대 국회에서 영남 지역 의원 중 절반에 가까운 26명(48.1%)이 초선 의원들로 채워졌다.


국민의힘 101명 중 54명이 영남 의원 

2월 1일 오후 여의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의총). 국민의힘 의원 101명 중 영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 54명에 달할 정도로 영남 비중이 높다. 중앙포토

 
국민의힘은 전통적으로 영남 의원들의 비율이 높았지만, 특히 지난해 총선에서 수도권에서 참패하면서 영남의 비중이 더욱 커졌다. 국민의힘 의원 101명 중 영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은 54명(53.5%)으로 절반을 넘는다. 의원뿐 아니라 영남 지역 당원 비율도 높다. 당원(대의원·책임당원·일반당원) 투표 70%, 일반여론조사 30%로 승부가 결정 나는 전당 대회를 영남 여론이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당내에선 “영남 일색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면 대선에서 큰 코 다친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남 지역의 한 초선의원은 “정치는 결국 이미지 싸움인데, 당 지도부가 영남 일색이라면 국민 눈엔 과거 회귀 정당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재선 의원도 “영남당이라는 굴레가 대선 승리의 핵심 요소인 외연 확장을 가로막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그동안 호남 출신인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당을 맡아 영남당 색채를 완화시킨게 4·7 재·보선 승리의 한 요인이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역 갈라치는 게 바로 구태정치” 반발도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4일 당내에서 불거진 영남당 논란에 대해 "영남당 운운은 자해행위"라며 "전국 정당이 되기 위해선 다른 지역에서 더 지지를 받도록 노력해야지, 영남 정서를 후벼파선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중앙포토

 
반면 영남당 논란을 “악의적인 프레임”이라고 불쾌해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영남 지역은 당이 어려울 때마다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쳐 준 핵심 기반”이라며 “스스로 영남당으로 깎아내리는 건 영남 지지층을 모독하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한 5선의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도 영남당 논란을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정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서 “당 일부에서 나오는 영남당 운운은 자해행위”라며 “전국 정당이 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더 지지를 받도록 노력해야지, 영남 정서를 후벼 파는 발언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당 대표 경선에 나선 조해진 의원은 “중요한 건 누가 대선을 승리로 이끌 적임자인지를 가리는 인물론”이라며 “선거 한 달을 앞두고 뜬금없이 지역을 따져 분열을 조장하는 건 저열한 프레임”이라고 비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명직인 장관 등 인선은 지역 안배가 상식이지만, 정당의 선출직을 놓고 지역을 따지는 건 소모적인 논쟁”이라면서도 “다만 계속 제기되는 영남당 논란을 탈피하는 게 차기 당 대표의 과제라는 건 명백하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