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잠재 주자들 중 지지율 선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표적이다. 잠행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최근 동선을 뒤쫓는 이는 기자들뿐만이 아니다. 정치적 동행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모두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총선 때부터 “여기저기 다녀 보니 윤석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선거 운동하면서 그 사람 얘기를 많이 하라”고 주변에 권유했다고 한다. 측근에 따르면 그때부터 “윤석열과 라인을 구축해야 한다”며 접촉도 시도했다. “별의 순간”운운하기 1년 전부터 동물적 감각으로 ‘정치인 윤석열’의 가능성을 알아챘던 모양이다.
야권 러브콜 윤석열·최재형·김동연
문 대통령이 직접 등용했던 인사들
내로남불, 진영정치가 빚어낸 역설
윤 전 총장 못지않게 보수층의 기대를 받는 이가 최재형 감사원장이다. 정권의 전방위적 압박 속에서도 1년여에 걸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적절성’ 감사를 관철해낸 뚝심이 자산이다. 과거 경기고 재학시절 몸이 아픈 친구를 2년동안 업고 다녔고, 아들 둘을 입양해 키웠다. 또 구호단체에도 수천만원을 기부했다. 정치에 뜻을 드러낸 적이 없지만, 보수 식자층에선 “보수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 “윤 전 총장은 킹메이커, 후보는 최 원장”이라는 기대감이 쏟아진다. 감사원 내부에서도 “최 원장 취임 뒤 감사원의 인지도가 높아졌고, 직원들의 자긍심이 커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공교롭게 이들 세 명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냈거나 수행중이란 공통점이 있다. 현 정권과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존재감과 무게를 키웠다는 점도 같다.
윤 전 총장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임명장 수여식에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세를 끝까지 지켜달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던 문 대통령의 발언과 이후 윤 전 총장이 걸었던 고난의 세월이 오버랩된다. 조국 사태와 ‘추-윤 갈등’에서 현 정권의 내로남불과 위선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윤 전 총장이 정치적으로 뜰 일도 없었다.
최 원장을 임명하면서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공정의 관행을 잘 살펴달라”고 했는데 이 역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전교조 해직교사 특별 채용,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등에서의 불공정이 ‘최재형 감사원’의 철퇴를 맞았다. 월성 원전 감사 과정에서 최 원장에게 쏟아진 여권의 압박과 조롱은 “원전=악”이라는 교조주의적 이분법의 결정판이었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 2018년 12월 퇴임사에서 “경제 상황을 국민들에게 그대로 알려주고,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정책의 출발점은 경제 상황과 문제에 대한 객관적 진단”이란 말을 남겼다. 임기 내내 ‘소득주도 성장’을 놓고 청와대와 대립했던 그는 요즘 “미래의 화두는 철 지난 진영도 이념도 아니고, 흑백논리도 아니다”라며 전국을 돌고 있다.
문 대통령이 등용한 세 사람이 ‘정의와 상식’ ‘공정’ ‘진영을 초월한 미래 화두’를 무기로 야권의 러브콜을 받는 초유의 상황이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데, 이 역설적 상황의 결말이 사뭇 궁금해진다.
서승욱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