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재산 상속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지난달 30일 고 이 회장의 유가족 측은 세무당국에 12조원대 상속세를 신고했다. 이날 유가족은 5년간 6차례로 나눠 상속세를 내겠다는 연부연납을 신청했고, 1회차 분납액으로 2조원대 상속세를 납부했다.
고 이 회장이 남긴 재산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주식(시장 가치로 18조9633억원)도 이날 오후 공시를 통해 공개됐다. 삼성전자(4.18%)와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8%), 삼성SDS(0.01%) 중에서 삼성생명을 제외한 주식은 각각 법정 상속비율에 따라 나뉘었다.
이재용 등 삼성 유가족, ‘절묘한 승계’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이 부회장은 이미 삼성물산 주식 17.33%를 가진 최대 주주였다. 이번에 법정비율(9분의 2)대로 711만 주를 더해 3388만여 주(17.97%)를 보유하게 됐다.
여기에 고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절반을 상속받으면서 삼성생명 지분율이 0.06%에 10.44%로 확 늘었다. 삼성생명의 개인 최대 주주이자 삼성물산에 이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속 이후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1.63%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생명을 통해 삼성그룹 전체 지배력이 탄탄해졌다”고 설명했다.
유가족, 문병 다니며 어린이환자 자주 접해
의료공헌 현금 1조…‘숨은 사연’ 있었다
유가족은 무엇보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대응을 위해 7000억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한국 최초의 감염병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5000억원),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감염병 연구‧개발(2000억원)에 투입된다. 이와 함께 10년간 소아암‧희귀질환에 걸린 어린이 환자를 위해 3000억원을 내놨다. 10년간 1만7000여 명의 어린이 환자가 도움 받을 수 있다.
재계에선 삼성 일가의 사회 환원 방식에 대해 “오랫동안 법정 공방에 시달리고 있는 이 부회장 등 유가족이 상속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가급적 어떤 논란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 부회장이 수 차례 약속한 ‘준법’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겠다는 속내가 담겼다는 평이다.
특히 유가족이 의료계에 현금 기부를 결정한 데는 고 이 회장의 오랜 투병 생활이 영향을 미쳤다. 고 이 회장은 2014년 5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쓰러진 후 6년5개월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투병했다.
로비에서 어린이 환자 볼 때 마음 아파 해
익명을 원한 삼성 관계자는 “(유가족이) 한 번은 ‘어린이 환자가 왜 이렇게 많냐’고 질문해서 ‘대부분 소아암 환자이고 부모가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는 답하자 눈시울을 붉힌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도 높다. 이 부회장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한 경험도 있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대거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술품 기증 방식도 ‘무늬만 기증’이라는 구설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대개 예술품을 기증하면 소유권은 국가로 넘어가도 개인 갤러리나 공익재단에 두고 개인이 관리할 수 있다. 고 이 회장이 설립한 리움에 두고 관리해도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유가족은 아예 작품을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을 포함해 전국 곳곳에 보냈고 관리 권한까지 넘겼다.
“삼성SDS·삼성생명 지분 처분할 수도”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충분히 확보된 상태에서 삼성SDS, 또는 보험업법 개정 여부에 따라 향후 삼성생명 지분이 처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서현, 삼성생명공익재단에 3억 기부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