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바이오 진격, 대기업 순위 뒤집혔다

중앙일보

입력 2021.04.30 00:04

수정 2021.04.3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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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셀트리온·네이버·넥슨·넷마블 같은 인터넷·바이오 대기업의 재계 순위가 성큼 뛰었다. 쿠팡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를 받는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다만 공정위는 미국 국적이란 이유로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총수)에 지정하지는 않았다.
 

2021 재계 순위와 총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 따른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29일 발표했다. 기준 시점은 다음달 1일이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은 공시대상 기업집단, 자산 10조원 이상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구분했다. 올해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71곳으로 지난해(64곳)보다 일곱 곳이 늘었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40곳으로 1년 전(34곳)보다 여섯 곳 증가했다. 육성권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대기업집단 리스트는 시장 지배력 남용,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 규제의 기준점”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자산 5조이상 71곳 지정
상호출자제한 작년보다 6곳 늘어
정의선·조현준 회장 총수 첫 지정
카카오 18위, 셀트리온 24위 급부상
쿠팡 김범석 미국 국적, 총수 미지정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는 기업 순위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인터넷·바이오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 급부상했다. 카카오의 순위는 지난해 23위에서 올해 18위로 다섯 계단 상승했다. 공정위가 계산한 카카오의 공정자산총액은 올해 19조9520억원이었다. 지난해(14조2430억원)보다 5조원 이상 불어났다. 공정위는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 계열사에서 고객이 맡긴 돈을 제외하고 공정자산총액을 따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회계장부의 자산총액과 차이가 있다.
 
셀트리온(지난해 45위→올해 24위)과 네이버(41위→27위)는 처음으로 재계 순위 30위 안으로 진입했다. 셀트리온의 공정자산총액은 6조원, 네이버는 4조원 이상 증가했다. 넥슨(42위→34위)과 넷마블(47→36위)도 자산총액이 10조원을 넘어서며 처음으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됐다. 호반건설·SM·DB도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으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들어갔다. 재계 1위(삼성)부터 17위(부영)까지 순위는 지난해와 변동이 없었다.
 

자산 순위 큰 폭 상승한 기업집단

공정위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을 동일인으로 처음 지정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조 회장은 2017년 각각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김성삼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경영자를 동일인으로 판단해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켰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쿠팡은 자산총액 5조7750억원으로 60위에 올랐다. 공정위는 쿠팡의 동일인으로 법인(쿠팡)을 지정했다. S-오일이나 한국GM처럼 외국인이 소유한 국내 법인으로 봤다. 공정위는 “김 의장이 국내 쿠팡을 지배하고 있음이 명백하다”면서도 “그동안 사례와 계열회사 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민영화한 공기업(포스코·KT 등)이나 외국 기업의 국내 법인에는 개인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김 의장은 미국 증시에 상장한 본사를 통해 한국 쿠팡과 계열사를 지배한다. 김 의장은 미국 쿠팡의 지분 10.2%와 의결권 76.7%를 갖고 있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현재 시점에서 김 의장 개인이나 친족이 가진 국내 회사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없는 회사를 새로 만들거나 친족이 설립해 (쿠팡과) 일감을 주고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쿠팡 등 외국인 이유로 총수 규제 예외 … “국내기업 역차별” 주장도
 
공정위는 현행 동일인 제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공정위는 “현행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에 미비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지정된 개인은 배우자나 가까운 친인척과의 거래를 공시할 의무가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규제도 받는다. 하지만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형사 처분이 필요한 경우가 생겨도 한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김 부위원장은 “만약 아마존코리아가 (자산총액) 5조원을 넘었다면 아마존코리아를 지배하는 자는 제프 베이조스, 페이스북코리아라면 마크 저커버그가 분명할 것”이라며 “베이조스와 저커버그를 동일인으로 지정해 국내법의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 시 형사 제재 대상으로 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경쟁법학회장)는 “정보기술(IT) 업종의 신흥 대기업도 많아 이들을 하나의 틀로 규제하는 게 효과적인지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최근 성명을 통해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사익편취의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라며 “만약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공정위는 되새겨 봐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신규 지정한 대기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공정위는 올해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쿠팡 외에도 일곱 곳을 추가했다. 반도홀딩스·대방건설·현대해상화재보험·한국항공우주산업·엠디엠·아이에스지주·중앙이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계열사 수(2612개)는 지난해보다 328개 증가했다.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5대 그룹이 공시대상 기업집단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자산총액 기준)은 올해 51.9%였다. 2019년(54%)이나 지난해(52.6%)보다는 다소 낮아졌다.
 
세종=김기환·임성빈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