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면론의 급속 확산은 이 부회장이나 청와대에 부담이다. 우선 시기가 좋지 않다. 사면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렇다고 마구 행사할 수는 없다. 재벌 총수 사면은 민생·교통 사범과 중소기업인 수백~수천 명과 묶어 처리하는 게 정치적 부담이 적다. 그러자면 부처님 오신 날(5월 19일)은 너무 촉박하다. 광복절 특사는 너무 많이 남았다. 그 안에 여론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역풍이 심하게 불면 내심 삼성 측이 기대하는 9월 가석방(형기 3분의 2를 마친 시점)도 물 건너갈 수 있다. 조기 사면론이 이 부회장에게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란 얘기다.
586의 선악 이분법 극복하고
진영 논리 넘어서야 국익 지켜
국정 철학 대전환 계기 됐으면
사면론의 최대 걸림돌은 진영 논리다. 집권 586 세력과 핵심 지지층에 재벌=악=규제 대상이다. 이를 통해 경제민주화=공정=분배 정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정권의 핵심 가치요, 철학이자 버릴 수 없는 우상이다. 이 부회장의 사면은 이런 우상을 단번에 파괴하는 행위다. 더 나아가 기업인을 놔주겠다는 신호, 경제를 정치의 볼모로 잡지 않겠다는 약속, 규제를 풀겠다는 반성, 기업을 국유화하지 않겠다는 전향이기도 하다. 크게 보면 586의 선악(善惡) 이분법을 극복하고 국정 철학의 근본을 바꾸는 일이다.
대통령인들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다. 내년 대선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인 4자 대결(친문+이재명 경기지사+윤석열 전 검찰총장+국민의힘 후보) 땐 핵심 지지층의 결속이 승패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국익보다 진영을 우선하는 기득권 정치 세력에게 삼성 총수 사면은 언감생심이다. 청와대가 “검토한 바 없고, 검토 계획도 없다”고 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문 대통령이 온갖 정치적 부담을 딛고 사면을 결행할지는 알 수 없다. 진영과 국익이 부딪칠 때 늘 진영 쪽에 섰던 4년간의 국정에 미뤄 짐작하면 이번에도 기대 난망이다. 결과 역시 예측할 수 있다. 좀 더 빨리 죽어가는 한국 경제일 것이다. 그래놓고 재집권에 성공한들 무슨 영화를 보겠는가. 위대한 리더는 한 번의 결단으로 국민 가슴에 남는다. 문 대통령에겐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부디 진영을 넘어 나라를 구하시기 바란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